봄 꿈 산지니시인선 4
조향미 지음 / 산지니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마음에 남는다.

사는 일,

한낱 꿈이런가...

 

그이가 아팠나보다.

하긴 나보다 나이 좀 더 많으니, 이제 노인의 몸이다.

 

마음이 쭈글쭈글해졌으면

나른하게 납작하게 시들어갔으면

꽃잎은 이우는데 낙엽도 지는데

시들지 않은 마음은 하염없이

뻗쳐오르고 시퍼레지고 벌게지며

이렇게 푸드덕거리며 기세등등할까

그만 고운 먼지에 싸여

하야니 핏기를 잃고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서

더 이상 출렁대지 않고 들끓지 않고

조그맣고 동그랗게 여위어져서

소리도 없이 툭 떨어졌으면(이 가을, 전문)

 

가을은 나이듦의 유추고,

말라감은 자연스러움의 소치다.

인정해야하는데, 중력을 거스르는 화장품 광고는 너무 요란하다.

 

내 손가락은

우주의 나뭇가지다

모락모락 끊기지 않는 이 생각도

신이 피워올린 연기다(한 몸, 부분)

 

나의 오늘은

남은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오늘 나의 신비로운 몸을 묵상한다.

 

너 정말 안 되겠구나

나도 이제 손들었다

쇠도 아닌 사람에게 노인도 아닌 아이에게

독화살로 쏘아보낸 말들

그 무명의 불경

사막에 와서 참담히 무릎 꿇는다

쉿,

외경을 배운다(쉿! 부분)

 

고비사막에서 낡은 차가 섰을 때

승객들은 물었다. 당연하게도.

갈 수 있냐고, 고물이라고...

그때, 서른다섯, 기사 아내 보드마르의 말,

차에도 귀 있어요...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둘러앉는 일

다함께 둘러앉을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혁신과 행복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수업도 모둠 수업

회의도 원탁 회의

 

학교 텃밭에 둘러앉아 삽겹살을 구웠고

밥집 술집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논쟁하고 고민했습니다.

교사들 둘러앉은 자리 기승전결은 언제나 아이들

엎드린 아이 홀로인 아이 외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한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시키지 않을까

 

시고 떫은 날들도 많았으나

어김없이 수요일은 돌아오고

둘러앉았으므로

서로의 눈빛 읽고 마음 열어 갑니다

홀로 꿈꾸고

오래 좌절해본 사람은 압니다

무엇도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낮과 밤처럼 달라 보이는 너와 나도

함께 이어져 있음을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음을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한 사람의 백걸음보다 백사람의 한걸음이나

둘러앉아 행복을 배웁니다

둘러앉은 가장자리 밝고 따뜻합니다(둘러앉는 일, 부분)

 

학교에서 나이드는 일은

톱니바퀴가 되어

그저 모두 도는 리듬에 맞춰 도는 일...

 

일주일은 금세 가고,

그러노라면 한 달이 가서 중간고사, 또 기말고사, 그리고 방학

또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예전과 방학, 진급과 졸업...

 

나도 이러기를 올해로 30년차다.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나누지 않고

파편으로 사노라면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그처럼 봄꿈을 꾸며 살아야 할 노릇인데...

이렇게라도 일깨워주는 시집이 있어 감사하다.

 

89. 생때... 생떼로 써야 맞다.  뿌리가 흙에 심긴채 있는 잔디를 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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