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학년 3반 료타 선생님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새 학기 시작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학기말과 학기초,
교육 이야기를 읽게 되어 좋았다.
료타 선생은 똑부러지거나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닌,
조금 멍청하고 뒤떨어지는 선생님이다. 마음은 따스한...
숨을 못 쉬겠어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조그만 돌멩이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요.(50)
뛰쳐나가는 아이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료타의 주변에는
반듯한 교사도, 의뭉스런 교사도 가득하다.
학교는 공격은 할 수 없고 수비만 가능한 시스템으로 싸우는 셈이다.(82)
사건 사고에서 학교는 늘 수비적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전날까지 불가능하던 일이
어느날부터 힘들이지 않고도 가능하게 되는 경우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참으로 눈부신 감동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가르쳤다기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지닌 생명력으로 쑥쑥 자라는 거다.
다른 어떤 직업으로 이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127)
씨앗을 싹틔우는 일은 무던한 기대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의심과 불신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그 시간 덕에,
재크의 콩나무처럼 성장하는 황홀을 볼 수 있다.
획일적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개성적인 인간으로 자라긴 힘들지.
아이들한테 잘난 척하고 떠들기 전에,
선생이 먼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186)
지식으로 심어준 것은 그저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한 답이라야 다른 문제를 만나도 응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이해하는 속도를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202)
교사로서 고민하지 않는 생활인이란 참 재미없다.
그렇지만 사회 자체가 고루하므로, 교사의 개성이나 창조적 성향보다는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는 사람들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의심과 회의가 필요하다.
교육현장이란
결국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장이 아니라,
그 교사가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 시험되는 장소(275)
좀처럼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니까.
연애나 교육, 또 아이들까지
일단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은 일방적인 신념이나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잘 안 풀리지. 그런데도 상대가 조금만 움직여주면 될 텐데 하는 생각에
강요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347)
대상이 미성숙한 아이들이다 보니
강요하기 쉽다.
그러나 강요는 전달보다는 배달 착오를 일으키기 쉽다.
수취인이 없는 강요의 사이에서 교사는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교사의 임무는 그 나무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자라도록 받쳐주는 버팀목이면 된다.
실제로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나무인 아이들이다.(379)
아이들은 성장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교육이라 한다.
어른은 버팀목이고 물뿌리개의 한 방울 물이다.
성급하게 <알묘조장>한다고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생명력을 믿고,
무던히 적당한 관심을 뿌려주는 일이 교육이다.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말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