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지렁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권정생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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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정도 전에, 중학교에 환경 과목이 중시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음악과 미술 교사들이 뽑기를 해서 환경 연수를 받고, 부전공으로 환경 교사가 되어 수업도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 과목을 별로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농촌 활동을 갔다가 3박4일만에 쫓겨난 일이 있었다. 대학생의 농활을 계속 받아주면 추곡 수매를 분리 수매하겠다는 둥, 이장 아저씨에게 협박을 가해서 우리가 물러나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대학생들에게 농민들이 의식화를 당할 법이나 한 일인가 말이다. 땅을 밟고 흙을 읽구며 사신 그 분들의 성정을 누가 하루 아침에 뒤집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당키나 한 소리인가?

어느 날, 세미나를 할 때면 논리도 정연하고 아는 것도 많고 소신도 강한 듯하던 여선배랑 같은 조가 되어 콩밭을 매었는데, 콩밭에선 새끼 손가락 굵기의 지렁이들이 얕은 흙 아래서 튀어나오곤 했고, 그럴 때마다 그 선배는 소리를 질러대서 지청구를 먹곤 했다. 지렁이가 호미질에 두동강 나는 일도 생기곤 했는데, 그 때 그 선배의 호들갑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흙에서 놀아보지 못한 서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단 것을 처음 겪은 경험이었던가.

우연찮게 농촌에서 살고 있고,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의 글들을 묶었다.

농사를 짓는 일은, 땅에 하염없이 가까이 가는 일이며, 땅에 발이 푹푹 파묻히도록 몸을 수그리고 땀흘리는 일이며, 논과 밭에 하나가 되는 일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같이 가슴팍이 갈라지고, 비가 너무 와버리면 같이 허리가 휘어지는 그런 일.

7,80년대 운동권들의 세대를 386세대라고 일컫는다. 그 세대가 가진 힘이 대통령까지 만들어 냈지만, 아직도 간첩단 사건의 주범들이 될 수밖에 없는 세대다. 그들의 일부는 흙에 가까이 가서 터전을 잡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또다른 감옥살이와도 비슷하여 읽는 마음이 아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감옥에 가는 일이나 흙에 발이 매여 사는 일이나 매한가지로 마음 둘 곳 없는 것은 현대의 인간이란 존재의 감옥에 갇힌 때문이 아닐까?

그토록 목청 높여 반대를 해도 삽살개를 닮은 미국 여자와 주름살이 멋진 한국 남자는 뭣이 그리도 좋은지 생글거리며 생지랄을 떨어 쌓는지... 이 땅에서 난 과일을 먹는 일은 이제 고소득자에 한해서 가능한 일이 되리라. 하긴 FTA를 찬성하는 넘들은 어떻게 되든 무농약 채소에 이천 쌀을 먹을 수 있으리라 안심할는지도 모르겠다.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논밭의 풀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일은 시처럼 사는 일이라고 하는 마음을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이런 책이 아니었던들 어찌 만나 보기만이라도 했으리오. 그렇지만,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이 살아가는 농촌은 가난하고 삶의 무게에 찌들린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 어디서 문제는 시작된 것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환경을 가르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환경은 곧 '나'가 사는 여기고, 내가 살아갈 땅과 하늘과 물... 그런 것을 생각하며 사는 일이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흙을 디디고 놀면서, 푸르른 숲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이 환경 공부다. 큰 도화지에 콕 찍힌 한 점 잉크자국같은 것이 지구인데, 환경을, 자신을 크게 생각할 것 무에 있을까? 지렁이도 생각하고, 핵폭탄도 생각하고... 그러며 사는 것이다. 지렁이가 죽어도 우리는 죽고, 핵폭탄이 터져도 우리는 죽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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