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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스트란 말 속에는, 인간으로 억압받는 계급으로서의 여성과 그 억압을 뚫으려는 투쟁성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요즘은 여성스럽다든지, 여성답다는 말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넓게 본다면, 대지를 어머니의 품으로 상징한다든지, 평화를 사랑의 손길로 나타내는 것처럼 얼마든지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하는 일이 우리말을 다루는 것이라서, 숱한 글들을 읽곤 했지만, 여적지 김선우처럼 우리말을 섬세하게 조물락거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 김선우의 글들은 그래서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눈길로 쓰다듬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문예 창작하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그미의 글을 그대로 손으로 베껴 적어 봐야 할 것이고,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그의 신선한 눈, 그 선명한 관찰력의 결과로 빚어진 통찰의 힘을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소한, 너무도 작고 매일 만나는 것이어서 이야깃거리가 도저히 나올 수도 없을 것같은 단순한 사물을 붙들고 그미는 별 자잘한 수다를 다 떨고, 별 궁금한 생각의 날개를 다 펼쳐 낸다.
날마다 몇 번을 집으면서, 한 번도 관찰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 숟가락에서 오목한 포용과 볼록한 애정을 발견하는 김선우는 천상 여자고, 천상 시인이다. 그치만 김선우가 오목한 숟가락에서 거꾸로 맺힌 제 모습만 보고, 숟가락을 눈 바로 앞에 가져다 대면 나를 보는 더큰 내가 똑바로 나를 응시하는 것을 못 본 것이 좀 통쾌하다.
새 집에 이사를 오고, 벽에 못을 박는 일은 남자인 나의 일이었는데, 석고보드로 된 면에 나사를 박는 일은 크게 미안하지 않으나,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어 생채기를 내고, 피스를 박는 일이나, 펜치로 못을 잡고 망치로 텅텅거리며 못을 두들기는 행위는 언제나 낯설기만 한 것이었는데, 그런 걸 같이 느낀 김선우가 마냥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선우랑 만나면 하루 종일 재재거리면서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미는 나처럼 낯선 사람 앞에서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성격이리라. 그렇지만,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면, 남들의 이야기 속에 사사건건 끼어들고 싶을 정도로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리라. 다만, 차이점이라면 그미는 그 세세한 것들을 글로 남길 줄 안다는 것이고, 나는 아니란 것일 뿐.
에어컨을 좋아라 하지 않는 성벽이며, 휴대폰에 이물스럽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속성, 촛불을 켜두고 초의 눈물을 바라보며, 초가 태우는 공기와, 초를 밀어올리거나 끌어 당기는 힘을, 그리고 가끔씩 그 타,닥, 거리는 꿈깨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그미의 글을 읽는 일은, 아주 매력적인 친구와 마주 앉아서 끝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재거리고 또 그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우리 인류에겐 아주 오랜 습관이었으나 점점 사라져가는 그런 재미를 되살려주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누구에게 책선물 할 때, 1순위로 주고 싶은 책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