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으면서, 작가의 이름이 참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글을 여성이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글은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남성스런 소재와 우악살스런 주제와 뻣뻣한 남성들의 이야기가 와이오밍이라는 먼지나는 건조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른바 서부라는 곳이 이런 황야였으리라. 먼지 냄새 풀풀 풍기는 사막과 언덕에서 소, 말, 양, 개 등의 가축들과 땀냄새 푹푹 나는 남자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들은 단순하다면 단순한 매력을 가진다.

그렇지만, 이 책을 관통하여 애니 프루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섬세한 선은 '추억' 또는 '기억'에 맞닿는 선이다. 아슴푸레하게 떠올랐다가 어느 순간 발화점을 넘어선 듯이 화르륵 전율로 불타오르는 정신의 도화선.

건조할 정도로 푸석거리는 문체를 타고 쿨럭거리며 다가오는 보잘것 없는 인간들의 추억들은 그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일정 정도의 거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거리감이 주는 아스라함이 그미의 글이 갖는 힘일까? 어느 순간 그 거리를 타고 넘어와 우리 심장 속의 핏줄 안으로 먼지 냄새 가득 풍기는 뒷맛을 남기고, 어느새 글을 다시 메마르고 건조하게도 끝나 버린다.

눈물을 펑펑 흘린다거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애절하게 뒤엉킨다거나 하는 자잘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단편이어서 금세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생들은 두고두고 REM 수면 상태에서 떠오르는 첫사랑 또는 동경의 기억처럼 아슴프레하게 떠오를 추억들을 강렬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영화가 멋진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물론 소설에서 모티프를 따갔을 뿐,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와이오밍주의 모래가 서걱거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화들짝 놀라게 뜨거운 전율로 느끼기에는 소설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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