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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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되는대로 빌려온 소세키가 마지막 권이다.

아직 태풍, 그후, 한눈팔기는 덜 본 상태인데,

이 두꺼운 책의 마지막이  -미완-이라니...

 

소세키의 제목은 가볍다.

그렇지만 전개되면서 그 제목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게 된다.

명암은 빛과 그림자인데,

빛이 있어서 어두운 부분도 생기는 것이고,

야누스처럼 뗄 수 없는 개념이다.

 

부부도 이와 같고, 연인도 그와 같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고, 빛이 흐리면 어두움도 연하다.

 

표지에 적힌 구절은 앞부분에서 등장하는 푸앵카레의 이야기다.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19)

 

산다는 일은 이런 우연의 연속이다.

소설의 플롯은 그런 우연들에서 필연적 귀결을 찾아내려 들지만,

삶은 그렇지도 않다.

그런 어느 날, 실 끊기듯 툭, 끊길 수 있는 게 삶이다.

 

쓰다와 오노부라는 부부는 친한 듯 하지만 잘 융화되지 않는 면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다.

 

오노부는 지금의 쓰다에게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미래의 자신도 고모처럼 기름기가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미래에 가로놓인 필연적인 운명이라면

언제까지고 현재의 광택을 유지하고픈 오노부는 언젠가 한번 슬픈 타격을 입어야 했다.

여자다움이 사라져버렸는데 여전히 여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젊은 그녀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생존으로 여겨졌다.(179)

 

그녀의 속셈은 알 수 없다.

남편이 치질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태연스레 고모부집엘 가곤 한다.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쌀밥을 먹을 수 없다니 정말 불행하지?(180)

 

고모부는 당뇨라서 그렇다

이토가 암살당하는 사회상도 잠시 등장하고,

나중에 쓰다가 기요코를 만난 온천의 도코노마에도 한국 꽃이 놓여 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조선인들에게는 고난이던 시절 이야기...

 

인생이란 그런 속에서 우연과 우연이 복잡하게 얽히는 셈판이다.

 

오라버니는 올케언니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 밖에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304)

 

순정 소설과 가정 소설이 교차되는 지점.

병문안온 여동생 오히데와 쓰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되는 오노부.

 

신문 연재 소설인 만큼 연속극적 요소가 많다.

 

남자한테는 세상에 있는 다른 여자들은 마른풀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

그보다는 좋아하는 여자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가운데

언니를 제일 좋아해주는 것이

정말 사랑받는다는 의미.(391)

 

오히데의 입을 통해 하는 이야기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깝다.

남자들에게는 아내를 제일 좋아해주기만 하면

세상에 얼마든지 좋아하는 여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내용.

 

하기는, 둘만의 뜨거운 사랑은 낭만주의 시대에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고,

근대의 목소리에는 '안나 카레니나'처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입장과 달리,

남성들의 삶의 양태는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근대 이후에는 가정 밖에서 오히려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으니...

오노부에게 가정의 평안은 전부일지 모르지만,

쓰다는 자유를 향해 눈을 뜬다.

 

되려고 하건 말건 지금이 너는 자유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행복한 것이다.

그 대신 어디까지나 매듭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딘가 부족한 것이다.

너의 미래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너의 과거에 있었던 한 줄기 불가사의보다

몇 배의 불가사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불가사의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것을 미래에 요구하며

지금의 자유를 내던지려고 하는 너는 바보인가 영리한 사람인가?(532)

 

가문의 결합이던 중세의 봉건적 결혼관이

근대에 오면서 갈등을 겪는다.

개인의 자유와 결혼의 단단함 사이의 마찰음은

끝없는 허구적 스토리의 산모가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명암'이란 제목으로 풀어나가던 작가가

결국 지병으로 쉰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인생 만사가

이 책 표지에 적힌 것처럼 말로 풀어내기에는 너무 복잡한 우연이 많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허무하기도 한 것이

삶의 양면이다.

 

밝음과 어둠으로 감각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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