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창비세계문학 44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현선 옮김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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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징은 '태양'이다. 그 태양은 날마다 더욱 솟구쳐(욱일승천) 욕망의 화신이 되었으나,

패전으로 저물어 버린다. 그것이 '사양'이다.

 

다자이(太宰)라는 필명도 좀 우습다.

후쿠오카의 '다자이후'는 '학문의 신'을 모시는 텐만구와 함께 있어 '학업성취'를 빌러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적인 오만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진다.

 

'사양'에서는 망해버린 화족 집안이 등장한다.

그 딸의 비상한 의지는 소름끼친다.

 

사생아와 그 어머니.

하지만 우리는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며 태양처럼 살아갈 작정입니다.

부디 당신도 당신의 투쟁을 계속해 주세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희생자입니다.(318)

 

전후 일본인들이 눈물을 씻으며 읽었을 법하다.

나로서는 소름끼치고 화가 날 따름이지만...

 

당신들은 내가 죽은 것을 알면 틀림없이 울겠죠.

그러나 살아있는 고통과 그 넌덜머리 나는 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내 기쁨을 생각해 본다면 당신들의 그 슬픔은 점차 사라지리라 생각해요.(307)

 

남성 화자의 목소리는 이렇다. 죽음이다.

결국 다자이는 자살하지만

시대로부터 달아나버리는 모양새다.

가해자로서의 반성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잖아요.

우리는 살아있기만 하면 돼요.(비용의 아내, 173)

 

이렇게 말해놓고... 무책임하다.

 

다자이는 남성 작가임에도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

다자이에게 여성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매개.

삶의 밑바닥에서 표류하던 여성들은 생동감있게 표현되면서 남성과 동반자적 관계 형성(해설, 361)

 

모든 화자는 여성이다.

처지가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의 목소리로 삶의 지향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비관적인 죽음만 뇌까릴 것 같아 두려웠을지 모른다.

 

이대로 소녀인 채로 죽고싶다.

문득, 병에 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굉장히 심각한 병에 걸려 땀을 폭포처럼 흘리고 삐쩍 마르게 되면

나도 완전히 깨끗해질지 모른다.(41)

 

성인 여자의 몸을 더럽다고 여기는 풍토가 있었던 듯.

 

아름다움에 내용 따위가 있어서 되겠는가.

순수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무의미이고 무도덕이다.

반드시 그렇다.

그래서 나는 로코코가 좋다.(여학생, 47)

 

당대 데카당스 문학의 영향은 유미주의, 탐미주의로 번지면서

질병과 죽음, 잔인성 등을 추구한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욕망은 단 하나.

푹 자고 싶은 욕망뿐.

그 군인들이 딱하면서도 한편 부럽게 여겨졌다.

불쾌하고 번잡한 마음과 상관없이 겉도는

아무 근거가 없는 생각의 홍수와 깨끗이 결별한 채

그저 수면만을 갈망하는 상태는,

정말 깨끗하고 단순해서 생각만으로도 상쾌.(51)

 

참 나태롭다. 순수를 지향하는 생각이

기껏 군인이라니...

하긴, 요즘 청와대에 '위안부'를 청원했다는 넘들도 있더라만, 뇌가 주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보꾸토오 기담>은 '화류계 여성과 문학인 남성의 교제를 그린 작품'이라 한다.

이상이 떠오른다.

 

여자에겐 하루하루가 전부인걸요.

사후도 생각하지 않아요. 사색도 하지 않고요.

순간순간 아름다움의 완성만을 바라며 살아요.

시시각각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삶의 목적입니다.(피부와 마음, 81)

 

여성의 시점으로 서술하긴 하지만,

당시의 여성관을 드러낸 남성화자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당초 이 전쟁은 말이 안 되는 거였어.

빙글빙글 돌다가 픽 쓰러지는 녀석들이 이길 리가 있나.(116)

남자에겐 불행만 있지. 늘 공포와 싸울 뿐이야.(168)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드러난 구절은 많다.

다만 혁명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을 늘어 놓으면서도

가해자로서의 통렬한 반성은 없고,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중하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모기장을 치고 두 아이 틈에서

川자가 아니라 小자로 잠을 잡니다.(오상, 133)

 

자신들이 그렇게 왜소해 보인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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