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뇌를 열고 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글이다.

수술 과정의 치열함도 등장하지만,

인간의 뇌라는 신경 조직의 신비로움에 대한 통찰과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멋진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글솜씨도 뛰어나지만, 그가 겸손하며 온화한 인간이고

정확하고 뛰어난 의사여서 가능한 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판 제목은 맘에 안 든다.

원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Do not harm.'인데

'괜찮은 죽음'이라니... 헐~이다.

그것도 참~~이라니. 그런 죽음은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는 마치 이 책을 '호스피스' 안내서로 보이게 한다.

 

우리 뇌에는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가 들어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의식의 조각을 가지고 있을까?

의식이 있으려면 다시 말해 아픔을 느끼려면 얼마나 많은 세포가 필요할까?

아니면 의식과 생각은 이 수십억 개의 세포를 한데 묶는 전기화학적 충격안에 살고 있을까?(277)

 

날마다 말랑한 뇌를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인체의 신비를 실감하는 듯 하다.

 

공기처럼 자유로운 내 생각,

책을 읽으려고 애쓰지만 실은 구름을 구경하는 내 의식,

지금 이 단어를 쓰고 있는 내 생각을

굳이 '마음과 뇌의 문제'라는 복잡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나의 의식과 자아가 실은

1000억 개가 되는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지껄임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는 그저 경외심과 놀라움을 느낄 뿐이지,

물질에서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문제로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169)

 

간혹 말도 안 되는 병원 행정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등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하는 일이니, 에피소드로 넘긴다.

인체라는 신비로운 존재는 인간의 허접한 시스템이 따라잡을 수 없는 범위 너머에 있으니...

 

안달복달하고 화를 내는 가족들의 짜증과 분노는

세상 모든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156)

 

자신의 가족의 문제가 되면, 누구도 예외는 없다.

완치 후에라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의사인 것이다.

 

흔히 외과의사는

강철같은 신경,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50)

 

강한 정신력과 대담함, 섬세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해야 하지만,

인간의 기술과 능력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 지향과 현실 사이의 흔들림을 참 잘 쓰고 있는 좋은 책이다.

 

그 환자는 앙고르 아니미 Angor Animi, 영혼의 불안을 뜻하는 앙고르 아니미를 느꼈다.

심장마비가 왔을 때 일부 사람들이 느낀다고 하는,

곧 죽을 것이라는 느낌.(118)

 

자신의 오판으로 앙고르 아니미의 표정으로 죽음을 맞는 환자에 대한 기억조차 기록한다.

절대로 <해를 끼치지 말라>고 배우지만,

인간의 무신경함과 무지는 늘 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오늘이 원래 수능일이지만, 어제 포항지역의 지진으로 1주일이 연기되었다.

이후의 입시일정, 여행이나 수술 예약 등 그 여파가 굉장할 것이지만,

포항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감에 비하자면 그 불편함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얄팍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수술이라는 게

사실 운에 많이 의존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마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술이 잘되면 결코 그렇게 믿지 않는다.(151)

 

인간은 아무리 실력있는 외과의사라 하더라도

알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일 뿐이고...

 

현미경과 수술내시경을 통해

수술 현장에서 뇌동맥과 사투를 벌이는 실감도 굉장하고,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면서

자신은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해야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환자 가족들이나

병원 관계자들이 읽어볼 만한 대목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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