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끔찍한 책이고,

비명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그 비명이 숨겨진 구조가 담담하게 쓰여진 책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슬픈 모습이 투영된 책이다.

 

책 마지막 부분의 평가를 보면, 남자와 여자의 평이 전혀 다르다.

강명숙, 김별아 서영인, 윤성희, 정여울의 평가는 공감의 언어로 가득한데,

정흥수, 주원규, 한창훈, 황현산의 평가는 추상적이고 막연했다.

우연히 여성 작가가 앞에 남성 작가가 뒤에 놓인 것은 가나다의 일인데, 그리 되었다.

 

고등학교까지 이성교제는 불온시 당하고

날라리들이나 까부는 것으로 치며,

심한 경우 순결 교육 따위로 아이들을 괴롭히다가,

대학생이 되면 한국의 비정상적 음주벽 앞에서 자유와 방종은 뒤섞이게 되는데...

연애와 성폭행의 애매한 경계선은 제정신일때조차 희미한 것인데,

술에 취한 뒤의 엠티 같은 곳에서는 사고 나기 십상인 것이다.

 

해마다 엠티 장소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저질러졌다는 뉴스가 나고,

명문대 학생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식이 들려오는데도,

아이들을 아직도 순결교육 안에 묶어두는 것은 심히 불안정한 공간이다.

 

데이트 폭력이나 엠티 등에서의 성추행, 성폭행은 예방할 수 있고,

충분히 교육해서 예방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애매한 수준에서 시작된 성적 관계가

사랑이라는 막연한 미명 아래 폭력으로 치닫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인가요?

거부의사를 밝히셨나요?

도중에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 있으세요?

싫은 기색 비친 적 있으세요?(45)

 

강간과 준강간(?)의 경계에서 상담사가 하는 말은 더 큰 상처를 준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는 교육은,

대학생이 된 상태에서 연애 감정과 성적 충동,

절제보다는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는 책임지지 못할 결과로 이어지기 쉽게 된다.

 

지도교수는 남자보다 더 남자같은 사람이었다.(263)

 

여성이든 남성이든 의식은 다를 수 있다.

남성이라도 오픈된 마인드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여성 역시 갑갑한 인성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현실에서 현실은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제대로 살겠다는 목표, 달라지겠다는 목표,

더이상 과거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목표,

잘못한 건 가해자들인데

왜 피해자들이 숨고 괴로워하며 살아야 합니까.

누리지 못한것들 다 챙겨가면서 즐겁게 살아도 부족해요.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해요.(286)

 

세상이 달라져야 하지만,

관성은 쉽게 멎지 않는다.

조두순이도 술먹고 심신미약이라 봐준다는 판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수밖에...

 

과장된 행동도 많이 하고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을 모두 사랑해버리죠.

그건 외로운 게 아니라 화가 나있는 거예요.(292)

 

외로운 사람들은 세상에 화가 나 있으면서, 과장된 친절을 표출한다.

그런 사람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진공 청소기'라면서 피해자로 만든다.

 

강제로 관계를 맺게된 후

이 상황이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울었어.

내 삶이고 내 몸인데,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어.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믿어 주겠어.(320)

 

스무 살 어린 아이들이 무얼 알겠는가.

그것도 고3까지는 무균실에서 책만 읽게 해 놓고는,

사회의 구습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일은 잔인하다..

 

기성 세대 모두가 가해자이고,

이제 기성 세대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뜨지 않는 사람만 가득한 세상은 지옥이다.

눈뜨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막 가득한 세상은 '눈먼 자들의 지옥'도를 그릴 뿐이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재미 없고 끔찍해도,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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