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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히토까라 히토에 人から人へ
가케와타스 掛け渡す
하시와 나이. 橋はな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행인 편의 표지에 쓰여진 하이쿠인데,
본문에 보면 독일 속담이라 소개된다.
주화자는 '지로'인데 주인공은 '이치로'이다.
조지 매러디스라는 영국 소설가를 인용하면서,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혼, 이른바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138)
이런 말을 한다.
제목인 '행인'은 떠돌이이면서 나그네다.
인생의 덧없음. 허무함을 역설하는 명사다.
소세키보다 후대 사람인 하이데커가 정리한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네. 형님은 차분히 누워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나고, 걷고, 달리고,
이미 달리기 시작한 이상 멈출 수 없고,
시시각각 속력을 높인다네.
그 극단을 생각하면 두렵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네.(363)
질병으로 입원한 친구 미사와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재미난 에피소드지만,
소세키의 자전적 질병력이 담겨있기도 하다.
인생은 나그네에 불과한데 '결혼'으로 맺어지는 <영혼>은 환상이 아닌가.. 하는
지로는 결혼을 선뜻 하지 못하는데,
형 이치로의 결혼생활 역시 위태위태하고,
오카다와 오카네의 행복해보이는 결혼생활 역시 피상적일 것이고...
인간이 만든 부부라는 관계보다는
사실 자연이 만들어낸 연애가 더 신성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좁은 사회가 만들어낸 답답한 도덕을 벗어버리고
커다란 자연의 법칙을 찬미(261)
결혼으로 맺어지고 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 많은 위기가 놓인다는 걸 쓴다.
지금의 일본 사회는
어쩌면 서양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다들 겉만 번지르르하고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만 존재.(246)
현대에 따라붙는 고독은 필연이다.
결혼 역시 해결책은 아니고, 오히려 그 심연을 확인하는 관계이기 쉽다.
남자는 싫어지기만 하면 도련님처럼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부모가 화분에 심어 놓은 나무같아서
한번 심어 지면 누가 와서 움직여주지 않는 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요.
가만히 있을 뿐이지요.
선 채 말라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요.(298)
형수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의 입장도 들려준다.
나는 한 해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꽃의 계절을 하는 일 없이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달이 바뀌어 세상이 푸른 잎으로 뒤덮이고 나서
문득 지나간 봄을 돌아보니 무척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하는 일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328)
계절은 인생의 비유이기도 하다.
청춘의 계절은 시끄러운 마음을 담고 허망하게 지나간다.
장년이 되고 보면 불만스럽다.
겉으로 보기에 자못 어엿한 신사 같지만,
실제로 내 마음은 묵을 곳 없는 거지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헤매고 있네.
24시간 내내 불안에 쫓기고 있지.
한심할 정도로 진정되지 않네.(367)
걸으려고 생각하면 걷는 것은 자신임에 틀림없지만,
그렇게 걷지고 생각하는 마음과
걷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샘솟는지...(369)
살아가는 사람, 걷고 있는 사람, 행인은
불안하고 쫓기는 존재라는 인식을 소세키는 거듭 밝힌다.
근대 일본인의 불안 의식이 잘 반영된 소설이고,
한국의 소설가들도 영향을 받았을 법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