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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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방학때, 상담 연수를 받고 있었는데... 한동대학교 교수님께서 오시더니 이런 농담을 하셨다.

"우리 학교엔 건물이 한 동밖에 없습니다." (썰렁~~ 그걸 정말 그렇다고 알아듣는 분도 계셨다.)

한동대학교는 기독교계통의 학교로, 여느 대학가가 추잡한 상업성으로 물드는 요즘, 깡촌에 틀어박힌 학교다. 포항에서 30분은 논길을 달려야 갈 수 있는데, 이 학교의 가장 독특한 점은 학생을 뽑을 때, 문과 이과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과도 필요없다. 그냥 뽑아서 나중에 가른다.

나는 이 학교가 정말 옳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 17살의 나이에 무얼 안다고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서 가르친단 말인가. 의사가 경제도 법도 윤리도 몰라도 되고, 법관은 과학적 지식에 무지해도 되는가? 한국처럼 문과와 이과가 넘나들기 힘든 구조도 흔하지 않을 듯 싶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걸 통합한다거나 하다가는 집단 이기주의의 방패에 찍혀 사망할는지도 모른다.

최재천, 도정일의 <대담>을 워낙 재미있게 읽은 참이라, 최재천의 스승님인 윌슨 선생님의 <통섭>을 겁없이 빌려왔다가 대출 기간이 지나 갔다주었던 일도 있고, 그래서 이참에 학교에 사 두고 오래오래 읽었다.

아, 그런데,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이것도 통합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자연과학적 설명에서는 도통 오리무중, 아리아드네의 실을 살금살금 찾을 수도 없었다.

뒷부분의 예술, 종교에 다다라서도 통합에 대한 이해는 멀고 멀기만 했다.

지식이 갈수록 파편화 되었고, 그로 인해 철학적으로 혼란스러워진 것은 실제 세계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인공물이라는 주장에는 십분 동감하면서도, 이미 파편화된 지식밖에 습득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글을 읽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통합은 혼돈이 아니라 질서이며, 지식인과 정치가와 시민이 모두 알아야 할 것을 밝히는 과정이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이 간다.

계몽주의자들이 진보의 필연성을 깨달았고, 과학과 수학이 그 엔진을 달아 주었으며, 인간의 창조성과 호기심, 추상화 능력, 수학과 자연과학의 조화로 세계는 변화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장인 수준에 머문 과학자들과 함께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과학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이기도 하지만, 영혼을 팔고 파멸에 이르는 파우스트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 저자의 은유는 자못 심각하고 재미있다.

저자는 인류가 객관적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없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보다는 길잡이가 되는 별을 향해 항해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 책을 다 읽는 것은 어지간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아니고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같이 문과적 지식에 닫힌 사람에겐 더욱... 그렇지만, 지식의 대통합에 도전한 윌슨의 글들은 <학문>과 <과학>이 어떤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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