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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시공간은
우주속에 포함되어있는 형식이 아닙니다.
정반대죠.
바로 우주가 시공간의 일부분일 뿐.(38)
이런 물리 이론도 등장하는데,
줄거리를 쓰자면... 횡설수설이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짧은 '시간' 속에
자기가 경험한 좁은 '공간'에서
단편적으로 일방적인 시점을 가지고(FPS, first person shooter)
그것도 편향적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현대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능은
청소년기 멍청하게 반복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재산 정도일까?
그렇게 살아서 우수하던 종수는 유학 생활에서 고난에 직면한다.
방황하던 종수가 꽂힌 것은 고딩 시절 친구 수영과
랄프 로렌에게 쓰던 영문 편지.
누군가가
당신 마음 속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가지고 가버린 거죠.(41)
이런 상실감을 극복할 방법은 없지만,
랄프 로렌에게 다가가는 복잡한 이야기들을 손보미는 능청스럽게 적고 있을 뿐이고,
그의 '임시 교사'와 '산책'에 매료되었던 나는
그 능청스러움이 좀 지겨웠을 뿐이고.
재미있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가 듣는 녹음 테이프에서 겹쳐지는 배음의 남녀 이야기를 찾는 구절이었다.
우습지 않아요?
당신과 만난 지 오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 모든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사랑은 죽지 않으니까.(347)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사실 포커스가 아닐 수 있고,
정확한 초점을 맞추는 것은 힘든 것일 게다.
다만, 어떤 기억인가를 품고
상냥하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걸로 '순간'은 사는 것이고.
손보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종수의 연구 중단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일 수 있지만,
뭐, 그런 것도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것이고,
초탈해버린다기보다는
'Dear~'에 담긴 포근한 애정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한다는 기분이 든다.
폴로는 단순함과 정확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운동.(56)
그의 컬렉션은 복잡한듯 간결하고 단순한듯 오묘하다.(57)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그렇지만 또 내 기준으로 세상은 오묘하게 이해가 된다.
따스한 애정을 가지고 살만한 곳이 세상이다...
나는 이런 메시지를 읽는다.
작가가 던진 공과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건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세상엔 '디어~ 손보미' 같은 마음도 있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