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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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1월,  5째딸 히나코가 급사한다.

신경쇠약과 위궤양으로 소설을 쓰지 못하던 소세키는

짧은 이야기들을 엮은 형식으로 <히간 지나고까지 彼岸 過迄>라는 소설을 엮는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요이코>의 죽음 대목은 절절하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필연과

현대 과학에 대한 막막함도 가슴아프게 읽는다.

쓰는 이는 피눈물을 흘렸으리라.

 

나는 지요코를 비교할 때마다

나는 반드시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와

두려워하는 남자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시인의 특색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철인의 운명이다.(245)

 

인물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흩어 놓은 것 같다.

인생은 두렵기도 하고, 두렵지 않기도 하다.

 

어제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흔히 친구의 부모 부고를 받고,

이제 간혹 자녀 결혼 소식도 받는 문자인데,

친구 본인상 문자를 한두 해에 하나씩 받게 된다.

사인은 심장마비...

 

문간에 국자가 하나 걸려있고

거기에 백일해 요시노 헤이키치 일가 일동이라 쓰여 있다.(271)

 

미신과 과학이 혼연된 시대.

가마쿠라라는 시골과 도쿄라는 근대의 도시가 혼재된 시대.

 

<게당케(생각)>라는 독일 소설 이야기를 하면서

질투로 상대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무척 통쾌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을 저지르고 난 후에는 필시 견디기 힘든 양심의 고문을 당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288)

 

죄와 벌도 떠오른다.

소설이 단막 형식이면서 연결되는 연작 형식인데,

그가 소설을 구상하기 힘든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던 시기였음을 짐작케 한다.

 

앞에 앉아있는 하녀 사쿠를 보고

단숨에 그려진 나팔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밥공기를 밥상에 놓으며

그 얼굴을 보고 고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290)

 

아직 하녀라는 신분 차이도 있던 시대.

인간은 고귀하다는 개념의 맹아는 뜨이지만,

그렇지만 전통적인 모습이 익숙하기만 하다.

 

나는 여자가 머리 틀어 올리는 걸 보는 걸 좋아한다.

머리 손질하는 여자의 손이 움직이는 동안 자연스럽게 완성되어가는

어머니의 작은 마루마게를 바라보고...

지요코의 머리를 일본식으로 빗으면

꽤 멋질 거라 생각했다.(300)

 

게이타로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처음 한 일이 미행.

미행을 위해 돌아다니며 전차를 타고

여인을 관찰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읽노라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생각헤게 한다.

영향을 아니 받지 못했으리라.

 

소세키의 시기에도

과학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 관점도 있었을 것이다.

 

사물의 진상은 모를 때야 알고 싶은 법이지만

막상 알고 나면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라며 지나간 옛날이 부러워

지금의 자신을 후회하는(321)

 

알고 싶어 사람들은 점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점괘는 참 모호하다.

마치 모리모토의 지팡이처럼, 다중적 은유를 띠는 것이다.

 

게이타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뱀대가리를 저주하고

다행스럽다는 의미에서 뱀대가리를 축복했다.(347)

 

청년 게이타로의 취업을 위한 스토리가

그의 쓴맛으로 울렁거리는 소설이다.

제목이 '히간(피안) - 춘분 전후 7일'인 것도

히나 마쓰리를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딸 히나코에 대한 애도도 담겨있다.

히간... 동안은 성묘와 법회 등의 풍습이 담겨 있으니...

 

자기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것 같기도 한,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한

물건을 갖고 있으니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것을 잊지 않도록...

 

이런 구절에서 나는 애꿎은 '한반도'를 떠올린다.

아무리 '독도 새우'를 올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새옷입혀 안아 줘도,

미국의 무기를 살 수밖에 없는 반도의 신세는,

아무래도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나가는 건지 들어오는 건지...

요령부득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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