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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우미인초란 개양귀비를 일컫는 말이다.
코쿠리코, 히나게시, 구비징소- 등으로 읽는다.
우미인이야 항우 장사의 여자였으니, 젊은 날의 상징으로 딱이렷다.
가는 봄이여
무거움 비파의
마음(253)
가는 봄의 무거움.
거문고 타는 마음이란...
이 소설의 공간은 교토와 도쿄다.
옛 공간과 새 공간.
시간은 1907년, 도쿄에서 박람회가 열리던 때다.
교토의 봄은 끊이 지 않는 소의 오줌줄기처럼 길고 적막(18)
새로운 시대,
근대는 골고루 오지 않았다.
교토는 길고 적막한 어둠 속의 봄날이었으리라.
그렇지만 근대는 또 적응이 되지 않던 시대.
속세의 모든 구토는 動이라는 한 글자에서 일어나는 법(25)
역동적인 곳은 번득이지만,
속세의 구토를 유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상징이란
본래 공의 불가사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위한 방편(63)
많은 젊은 인간상을 그린다.
태음인 식의 네모난 남자 무네치카와
천상 여자 그 여동생 이토코.
철학자 고노와 왈가닥 후지오.
후지오는 시인 오노를 사랑하지만...
오노는 스승 이노우에의 딸 사요코가 있고...
젊음의 사랑 역시 무겁다.
교토의 삶이었다면
이토코는 고노와 살고
후지오는 무네치카와 살고,
오노는 사요코와 살면 될 일이지만,
도쿄의 삶은 또 다르다.
이런 인물들은
<공>한 인생의 불가사의를
보고 듣기 위한 방편으로 만든 것들이란 철학적 요소도 강하다.
영국 사람은 마음에 안 들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영국이 모범이라도 되는듯
뭐든지 자기들 방식대로 밀어붙이려고만 하니까요.(341)
이렇게 비판하던 태음인은
최근의 좋은 기회에 외교관 시험에 합격(374)한다.
조선은 1907년이면 정미 7조약을 맺고 통감정치를 시작하는 지옥도였는데...
결국 무네치카는 런던으로 간다.
후지오는
진작 향이 빠져나간 차를
찻주전자와 같은 색 찻잔에 붓는다.
찻잔 바닥으로 떨어지는 누런 물은
그리 분명한 색은 아니었지만
가장자리까지 차차 색이 짙어지고 표면에 거품을 일으키며 잔잔해진다.(140)
분명 구시대의 운치도 그윽하다.
허나 새 시대의 빛도 매력있다.
그 사이의 젊은 날들은 개양귀비꽃처럼 아름답지만
또한 짧다.
교토는 봄, 비, 거문고의 교토다.
그중에서도 거문고는 교토에 잘 어울린다.(164)
피아노와 대조되는 거문고.
저 하이쿠 속의 <비파>는 수천 년 전통의 악기이고,
서양의 피아노는 새 빛이다.
번쩍이는 그림자에 춤추는 선남선녀는 집을 비우고 일루미네이션에 모인다.
자극의 주머니에 대고 문명을 체로 치면
박람회가 된다.(194)
일루미네이션.
아직도 청계천 가에는 일루미네이션으로 사람을 모은다.

수는 힘이다.
힘을 낳는 곳은 무섭다.
한 평이 못 되는 썩은 물에서도
올챙이가 우글거리는 곳은 무섭다.
하물며 고등한 문명의 올챙이를
힘 안들이고 내보내는 도쿄가 무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204)
백만이 모여 부정한 짓을 하는 권력자를 촛불로 내쫓기도 한 곳이다.
문명적이기도 하고,
그 인간들이 한 짓을 보면 야만의 시대는 그대로이기도 하다.
아직도 자살하고 자살당하는 국정원 관련자들 보면
시대는 어둡고 야만이다.
요령부득인 자는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
너무 요령있는 자는 난간을 건넌다.
난간을 건너는 자는 물에 빠질 염려가 있다.
후지오와 이토코는 6첩 다다미 방에서 바늘 끝과 다섯 손가락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든 대화는 전쟁이다.
여자의 대화는 더더욱 전쟁이다.(107)
그 가녀린 바늘끝 같던 대화의 끝은 허망하다.
우리 기쁜 젊은 날, 곧 화양연화는
짧아서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미인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