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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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라(枕)’는 베개란 뜻이고 ‘소시(草子)’는 묶은 책을 말한다.

따라서 제목 ‘마쿠라노소시’는 몸 가까이에 은밀히 써놓은 비망록이라는 의미로,

‘베갯머리 서책’ 정도가 된다. 이는 당시 남성들의 공적인 기록과는 다른

여성들의 사적인 감상록이라는 뜻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여성적 감각에 의해 썼다고 볼 수 있다.(알라딘, 마쿠라노소시 해설 중)

 

소세키의 풀베개는 일본의 근대 문명에 대한 비평서이자,

일본만의 문화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아련함(아와레)'의 정서에 대한 기록을 위해 쓴 책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마쿠라노소시의 아와레에 근접한 내용을 남기려

화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음악이고 조각이다.

이렇게 인간 세상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번뇌를 해탈하는 점에서

이렇게 청정한 세계에 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이 특별하고 유일한 천지를 세울 수 있는 점에서,

속세의 모든 총아보다도 행복하다.(16)

 

예술에 대한 생각을 수필체로 써 내려간다.

나미 같은 여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소설로도 볼 수 있으나,

주된 것은 화자의 상념이다.

 

나미 씨는 망연히 떠나는 기차를 바라본다.

그 망연함 속에는 신기하게도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연민'이 가득 떠 있다.

'그거예요, 그거,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185)

 

화자가 잡아채려하는 연민의 감정.

인간의 마음에서 움직이는 아련한 표정을 잡아내고자 하는 글솜씨.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한다. 나는 실린다고 한다.

사람들은 기차로 간다고 한다. 나는 운반된다고 한다.

기차만큼 개성을 경멸하는 것은 없다.

문명은 개인에게 자유를 주어 호랑이처러럼 사납게 날뛰게 한 뒤

다시 우리 안에 던져 넣고 천하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현대의 문명은 이 위험이 코를 찌를 정도로 충만해있다.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기차는 위험한 표본 가운데 하나다.(183)

 

문명은 위험하다.

일본에게 문명은 일.러 전쟁의 승리지만,

인간에게는 병신과 시신을 가져다 줄 뿐.

그 위험을 말하는 작가.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는 '마쿠라노 소시'의 아와레의 세상과 연결된다.

 

나는 깊은 산속의 동백을 볼 때마다 늘 요녀의 모습을 연상한다.

검은 눈으로 사람을 낚아채고 아무도 모르게 요염한 독을 혈관에 불어 넣는다.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다.

건너편 동백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다.

저 꽃의 빛깔은 단순한 빨강이 아니다.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큼의 화려함 속에 말로 할 수 없는 차분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초연하게 시들어가는 빗속의 배꽃을 보면 그저 가련한 느낌이 든다.

차갑고 요염한 달빛 아래의 해당화를 보면 그저 사랑스러운 마음이 인다.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동백과는 전혀 다르다.

거무스름하니 독기가 있는, 어쩐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속에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에게 아양을 떠는 모습도 없고

특히 사람을 부르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확 피었다가 툭 지고, 툭 졌다가 확 피고,

수백년 성상을 사람들 눈에 띠지 않는 산그늘에서

태연자약 살고 있다.

단 한 번 보기만 하면 그걸로 끝!

본 사람은 그녀의 마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보고 있으니 빨간 것이 물 위로 뚝 떨어졌다.

고요한 봄에 움직인 것은 그저 이 한 송이 뿐이다.

잠시 후 다시 뚝 떨어졌다.

저 꽃은 결코 지지 않는다.

무너진다기보다는 단단히 뭉친 채 가지를 떠난다.

가지를 떠날 때는 한 번에 떠나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져도 뭉쳐있는 것은 어쩐지 독살스럽다.

또 뚝 떨어진다.

저렇게 떨어지는 동안

연못의 물이 붉어지리라 생각했다.

꽃이 조용히 떠 있는 근처는 지금도 약간 붉은 듯하다.

또 떨어졌다.

땅위에 떨어진 건지, 물 위에 떨어진 건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조용히 뜬다.

또 떨어진다.

저것이 가라앉는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런 곳에 아름다운 여인이 떠 있는 장면을 그리면 어떨까...(137)

 

오필리아가 수면에 떠서 흘러가는 그림을 오버랩시킨다.

 

취미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풍류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리큐(16세기 일본 다도의 완성자) 이후의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렇게 하면 풍류겠지, 하며 오히려 진짜 풍류인을 바보로 만드는 재주가 바로 다도.(68)

 

기계적인 풍류, 예술에 대해 시니컬하다.

이런 것이 소세키의 멋진 점이다.

그의 소설 <마음>에서처럼 끝까지 캐들어가는 치열함과,

모두가 흐르는 방향을 고찰하는 통렬함.

 

단정이란

인간의 활력이 움직이려 하면서도

아직 움직이지 않은 모습.(54)

 

정중동의 모습이다.

단정에서 여운이 남고 정취가 전해진다.

천박하지 않으려면 단정해야 한다.

 

다시 예술로 돌아가서,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가도 살기 힘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15)

 

소세키 전집을 사 두고 학교를 옮겨 버렸다.

이 학교에는 아직 없다.

이제 소세키를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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