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 박남준의 악양편지
박남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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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각하...

照顧脚下

 

발 아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나이.

남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는 쉽지만,

제 발 아래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꽃 피는데 다뜻한 햇살이나 오줌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 바라봐주는 눈길이다.

기다림이다. 대화.

그러니까 말 걸기다.(30)

 

식물을 길러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애완동물이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32)

 

자기 시 구절이 교보 간판에 붙었다 자랑한다. ㅎㅎ

자랑할 만 하다.

 

부추밭에 핀 흰 민들레

너는 누구를 꾀자고(43)

 

풀과 대화를 나누는 걸 넘어서서 애정 행각이 유난스럽다.

그런 순한 눈과 부드러운 생각을 가진 시인이라도

도저히 갈앉힐 수 없는 시간도 있다.

아무리 묵직한 첼로 소리로 가슴을 눌러 놓아도...

 

운명으로 체념하기에는 너무 슬픔의 무게가 가혹하다.

세월호 뿐이겠는가

폭격당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과

말레이 항공기 뿐이겠는가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듣다가

불쑥불쑥 뒤틀린 세상의 일들이 튀어나온다

고요한 수면이 깨진다

내 얕은 강물의 깊이가 파문에 휘청거린다.(순하고 독한 생각, 140)

 

그래, 이런 것이 인간이다.

조고각하... 중으로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도 독하니까...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의 바로 그 시인이다.

밥상만큼이나 부드럽고 순하다.

책도 맛깔스럽다.

잘 덖은 햇차 맛이다.

사진도 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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