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왜 '나쁜' 페미니스트일까?

'소문자 페미니스트'라고도 쓰는데,

 

보통 페미니즘 운동은 큰 지지기반을 갖거나

목소리가 크고 선동적인 유명 인사들과 엮이고,

그래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리더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며

페미니즘에 본질적 문제가 있다고 결론내린다.

페미니즘과 <전문가적 페미니스트>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13)

 

서문의 변명처럼 '나쁜'의 함의는 단점과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이 아닌 비전문가의 이야기라는 제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꼴 페미'나 '메갈'은 인신공격처럼 들리기도 한다.

 

과거에 내가 사람들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때 느꼈던 두려움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결국 내가 외면받을거란 두려움이었고,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며,

이런 나를 이 사회나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15)

 

록산 게이는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이 글을 쓴다.

이 책의 한계는 주로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소재로 하고,

팝이나 힙합 노래 가사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이해가 난감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아 아쉽다.

뭐, 그런 거야 '소문자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한국 드라마를 십분만 보면 적용이 될 것이니, 별 문제 아닐 듯.

 

아내가 잘 보는 '무궁화~'란 드라마를 보면,

무궁화는 가난한 집에서 아이 딸린 과부인 '순경' 초년생인 반면,

그 상대는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경찰이거나,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인 덜렁이 재벌 2세거나 한 것을 보면 참 우습다.

 

텍사스 주의 클리블랜드에서 열한 살 소녀가 18명의 남자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을 때,

뉴욕 타임즈가 <악의적 폭행이 소도시를 뒤흔들다>로 기사를 썼다.

이 사건은 열한 살 어린이의 육체가 갈가리 찢긴 사건이지,

이 마을이 갈갈이 찢긴, 그녀를 강간한 남자들의 인생이 산산조각난 이야기가 아니다.(31)

 

범죄자 박근혜와 그 일당이 나라를 뒤흔드는 국기문란범죄를 저지를 때,

약한 한 여자라는 둥, 이런 변호는 죄인과 여성이라는 잘못된 줄긋기를 한 예이다.

그를 비난하는 '미스 박'이나 '배드 걸' 역시 그가 죄인이란 것과 여성이라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고.

역사가 여성의 지위를 그렇게 낮게 만들었다.

누구의 죄도 아니지만, 작은 페미니스트들이 더 늘어나야,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질 것이다.

 

변화하려면 의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변한다. 간단하다.(49)

 

시작은 널리 알리는 것이다.

책을 펴내는 것도 좋고, 나처럼 리뷰라도 쓰고 글로라도 알려야 한다.

차츰 변하는 것이지, 저절로 변해지지는 않는다.

 

독자가 책을 펼쳤더니, 이럴 수가, 책의 여자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들어~!

책에서는 인생을 찾아야 해요.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내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가? 입니다.(87)

 

작품 속의 문제적 남성(호밀밭의 홀든 콜 필드 같은)에 비해 문제적 여성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에 대한 지적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렇게 젠더를 상정하노라면

실은 이 둘이 같은 태양계 안에 있으며

생각보다 가까운 행성이란 사실을 잊게 된다.

많은 책들이 젠더에 관해 생산적 논의를 하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여성, 남성을 분리하여 바라보고

젠더 문제를 조금 더 신중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127)

 

남녀를 차이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그리 된다.

그리고 인간의 학문, 사회, 생활은 분리하고 차별한 경험이 쌓여 왔다.

 

젠더는 하나의 수행이자 불안정한 정체성에 불과하며

주체가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따라 형태가 계속 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적인 행동 양식을 통해 외부 공간에서 제도화되는 정체성.(189)

 

남자는 인생에서 세 번 울어야 하고, 여자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는 식의 말들.

시간이 흐르며 반복되다 보니 제도화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젠더라는 것.

 

폰 노이만(헝가리 출신 미국 수학자)가 말했다.

수학이 얼마나 단순 명쾌한지 모르는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학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인종과 문화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그 복잡함을 축소할 방도는 없다.(280)

 

이런 지점이 '나쁜'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는 속내를 포함한다.

 

호주작가 '수'의 페미니스트 정의 : 개똥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 여성일 뿐(355)

 

단순하지만, 시니컬한 통찰이 들어있다.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작가는 계속 페미니스트이고자 한다.

맺음말에 나오는 그의 의지.

 

어쩌면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운동에 중요한 이슈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의견을 낸다.

나는 여성 혐오,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제도적 남녀차별,

임금불평등, 날씬한 몸매 숭상, 생식의 자유에 가하는 반복적인 공격,

 여성 대상 폭력 등에 대해 아주 강한 의견을 갖고 있다.(374)

 

우리 모두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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