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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래된 책이다.
그래서 가부장제의 질곡이었던 호주제나 유리천장 같은 용어 훨씬 이전 책이지만,
'여성'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임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로서는 불편함이 여전할 것이고,
그만큼 정희진의 15년 전 저작이 아직도 유효함은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은 일관성이 없다.
페미니즘은 원래 일관성이 없는 운동이다.
처음 시작은 사회 고위층 여성들의 참정권 수준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매맞는 여성, 성판매 여성 등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관점에서
마치 잠자리 홑눈으로 모자이크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일관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 상황일 게다.
아직도 연속극의 가부장은 뭔 대기업 회장이런 넘이고,
그 재산에 연연하는 첩도 등장하고,
이혼녀라도 얼굴이 예쁘면 멋진 젊은 남자가 꼬이고... 이런 식인 수준이다.
이 책은 다양하다.
요즘에서야 이야기되는 위안부 '할머니' 같은 용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왜 장기수는 '선생님'인데 위안부는 '할머니'인지...)
헤아리기도 힘든 많은 부분을 다루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된다.
그런데 그 15년이 지난 지금도,
김여사, 김치녀, 된장녀...등 여혐은 심각해 지고 있고, 여적여 같은 말도 횡행한다.
꼴페미라는 둥, 메갈리안이라는 둥, 또 한편에서는 찌질한 한남충의 세계를 욕하기도 한다.
여성이라도 페미니즘의 구도에 적극 동참하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인게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소수자>는 권력에서 먼 거리에 놓인 약자다.
한국에는 흑인은 없지만, 현대판 심청이로 팔려오는 동남아 며느리들이 있고,
열악한 현장에서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싼값에 해치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부 영화에서는 그들을 비하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약자에 대한 공부라 생각하면 어떨까?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고, 누구라도 어떤 측면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 있으므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부로 생각하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세상 지식이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에 무지한 것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아직도 아는 것 자체로 비난받는 경우도 흔하다.
지식이 특정한 사회의 가체 체계에 따라 위계화 되어있음을 보여준다.(머리말)
세상에는 미친놈이 더 많다. 권력을 가진 만큼 미친짓을 할 기회가 많았을 게다.
그 나쁜 놈들이 박근혜를 이용해 사익을 취할 때, 박근혜를 <미스 박>이나 <배드 걸>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물론 박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여성이어서 죄인인 것은 아니다.
그의 죄를 욕하지 않고 그의 여성성을 조롱한 것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조윤선이나 정미홍같은 골빈 여자들도 있지만,
여성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다한 사람들도 있다.
추미애나 박영선 같은 캐릭터는 한명숙처럼 듬직한 멋이 좀 없어 아쉽긴 하다만...
여성주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편안할 수는 더욱이 없다.
여성주의뿐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12, 머리말)
이 책의 머리말이 참 좋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뜻한다.
대립은 서로를 소멸시킬 뿐이다.(14)
그래서 페미니즘은 충분히 더 문제가 되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36)
니들도 군대 가라, 김치녀 증말 싫다, 김여사 좀 걸어 다녀라...
짜증이 그냥 묻어나지만, 이런 것에서 폭력을 읽어내는 것이 공부다.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성차별적 언어들이 개선되고 있다.
남성은 인과관계, 의사전달 위주의 말하기를 하지만,
여성은 맥락적, 공감적 말하기에 능하다.
여성이 비논리적, 사적이라 비하되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적 방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76)
폐경, 처녀막, 미혼 등 남성 중심의 언어를
완경, 질주름, 비혼 등 사유의 변화로 많이 바꿔 나가야 한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마르크스, 80)
페미니즘은 철학이어서는 안 된다.
생활에서 차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개선되도록 살아내야 한다.
위례별 초등학교라는 곳에서 페미니스트 교사 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교육을 했던 모양인데, 학부모 단체, 종교 단체 등에서 항의를 해서 교사 모임 자체를 해산햇다는 뉴스를 접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사상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다.
물론 조금의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성소수자 문제나 동성애 등 시기상조인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식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은
권력을 가진 교회의 망상에 다름아닌듯 싶어 씁쓸했다.
여성들의 의식 변화는 급격한데
여전히 무례하고 폭력적인 남성이 많다.(88)
성추행 논란으로 징계를 받는 남교사가 많다.
아마 70년대 교사들이라면 한 학교에서 10% 이상은 옷 벗엇어야 할 것이다.
폭력교사까지 치면 절반 이상 될 것이다.
세계 통계에서 한국 여성의 평등 지수가 최하위인 것은,
그만큼 한국 여성의 인권과 의식 상승이 세계 최고라는 방증일 것이고,
불평등이 커진다는 것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변화에 둔감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흑인에게 피부색이 뭐냐고 묻지 않듯이,
세상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윤리'라는 그 말의 뜻처럼(倫 의 의미는 '무리'다' 인륜이란 다수자의 횡포일 수 있다.)
시선은 편파적이다.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110)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을까.
이미 20년도 전에 우리반 1,2등 하는 녀석이 일기에 썼다.
자기는 감옥을 가야 한다고... 여호와의 증인이어서, 어떤 일도 하기 힘들다고...
페미니즘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고, 횡포의 시선에 대한 깨달음이어야 한다.
공부하는 것이라야지, 그저 싸움의 도구로 전락하면 안 된다.
여성 운동은 사회 안에서 여성이 지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 역사, 정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문제는 기존의 공적 영역 중심의 협소한 개념을 바꾸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125)
성폭력을 저지른 명문대생은 법관이 너그럽게 봐준다.
앞날이 창창한 남자 아이라서 그렇단다.
성폭력의 피해자 여자 아이의 앞날에는 관심이 없다.
법 운용이나 일상 생활에서 모두 피해 여성의 입장이 아니라
남성의 경험과 이해에 의해 구성된다.
남녀 모두에게 여성의 주장은 지나치게 에민하고 과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남성의 주장은 자연스럽고 객관적인 것으로 수용된다.(156)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이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알게 된다.
페미니즘을 만나면 화가 나는 사람은, 그만큼 사회에서 불공평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군대다. 너도 군대 가봐~는 논리는 그 사회가 '죽어 버려도' 총 쏜 사람을 찾지 말아달라고 말해야 하는
슬픈 사회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이 누구 중심의 평등인가는 언제나 논쟁거리다.
정의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양성평등한 인권은 남성과 여성이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178)
남성만큼 배우고, 남성만큼 능력을 보여줘도,
독박 육아에 시달리고, 유리천장에 제한을 받는다.
온갖 청소, 빨래, 설거지에 아이 공부 지도까지 관리해야 한다. 현실은 결코 페어하지 않다.
남성이 생산한 지식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214)
법률을 만든 자도 남성이고,
일터의 구조를 만든 자도 남성이다.
한국 사회의 소수자는 참 광범위하다.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나라다.
교육 인프라가 이렇게 많지만,
거기서는 민주주의와 페미니즘 대신,
가장 남성적인 경쟁과 전투를 세뇌시켜 사회화한다.
결국 성공한 여성이라고 해도, 집에서 밥을 잘 해야 한다고 엉너리를 쳐야하는 것이다.
심상정 대선 후보처럼 역할을 나눠도 세상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멋진 일이다.
세상은 흐르고 바뀌게 되어있다.
거꾸로 노를 젓다가 두손 두발 들지 말고,
시류에 따라 공부할 일이다.
세상에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억압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가르침과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 교사를 적극 지지하고, 나 역시 페미니즘 확산에 노력하며 살려 한다.
이 책은 참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부분부분 여러 번 읽어야 할 고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