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란 무엇인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1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박미정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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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자퇴생이 동네 초등학생을 유괴, 살해, 사체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여중생들이 아는 후배를 피가 철철 흐르게 폭력을 가한 사건으로 학교폭력이 화두에 올랐다.

과연 '악'이란 어떤 것일지,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알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뒤적인 책.

 

그런데, 저런 나쁜 것들은 누가 보나 범죄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악'은 아니다.

칸트 형님은 역시 뭔말인지 모를 말들을

번드르르 멋지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 그리고 번역을 거치고 나면,

뭐 일본어 번역에 다시 한국어 번역이 되고 나면...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게 당연지사인 듯.

 

선의 개념 및 악의 개념은 도덕법칙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칙의 나중에 있고

도덕법칙에 의해 규정되어야만 한다.(139, 실천이성비판)

 

칸트 이전의 시대는 '신의 중세'였다.

인간의 이성이 '정언명령'으로 내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

신의 의지에 따르겠나이다~ 의 시대였다.

칸트 형님은 그걸 부정한 듯 싶다.

하니님이 인간보다 앞서는 게 '선'이 아니라,

인간이 법칙을 정한 뒤에 규정되는 거라고...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

네가 동시에 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준칙만을 따라서 행동하라.(137, 윤리형이상학 정초)

 

그러니 하느님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준칙이 법칙이 되는 세상을 선언한 것.

 

역시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들먹인다.

'마음'의 선생님을 도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도덕적 인간이란 늘 선한 행위를 하는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 타인을 불행하게 하는 구조의 한가운데서

신념을 쉽게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신념때문에 타인을 불행의 나락으로 떠밀 수도 없어서

계속 고민하고 쉼없이 흔들리는 사람을 말한다.(108)

 

그렇게 본다면 칸트의 '선'과 '악'은

재판관이 손쉽게 유죄, 무죄를 판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나침반의 자침과 같이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도덕적 인간으로 칭하는 것을 보면,

절대선을 살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신의 시대를 건너오는 철학적 정초가 된 사람이니 말이다.

 

실현된 행위가 간신히 외형적으로 도덕적 선과 닮았다 하더라도(합법적 행위)

그 표피를 벗겨 보면 자기 사랑에 뒤범벅된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칸트가 본 인간의 모습.(71)

 

우리가 합법적으로 하는 일 속에서도

스스로 반성하고 돌아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 삶은 '악'인 셈이다.

 

그러면 인간 심정의 악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 인간이 자기 사랑에서 비롯한 동기를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한 동기보다 우선하는 준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성벽을 가지는 것 안에 있다는 것.(169)

 

요즘 온갖 악행의 근원이었던 자유당이 하는 말을 보면,

'자기 사랑'만 남은 존재 같이 보인다.

그 그림자가 안철수에게서도 보인다.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성벽'을 가지고 있어, '악'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근본악이란

지극히 비열하고 피를 얼어붙게 만들며,

인간의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극한적 악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돕는다든가,

인색하게 보이기 싫어 기부한다든가,

타인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 진실을 전하지 않는 등의 섬세한 행위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타의) 행복을 추구하려 하는 한,

필연적으로 빠지는 함정이며 온갖 행위의 뿌리(177)

 

전두환도 이명박도

심지어 박근혜도 '정치행위'라고 호도한다.

온갖 비열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통치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지껄인다.

추악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하니 그들은 근본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조폭이 팔뚝에 쓰인 '차카게 살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자 생활인인 우리에게

칸트의 '악'은 돌아볼 지점을 준다.

물론 현대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더라도...

 

칸트가 제안하는 바는

왜?라고 거듭 묻는 것이다.

욥처럼 목이 쉴 때까지 묻고 또 묻는 것이다.(183)

 

세상은 한시에 맑아지지 않는다.

모든 악한 세력은 '앙시앙 레짐'이 되어 권토중래를 모의하고 있다.

계속 묻는 일만이, 세계 시민상에 빛나는 촛불 혁명을 명예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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