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도를 묻다 - 이현주 목사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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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은유로 가득한 마르코(마가) 복음을 이현주 목사님께서 풀이하신(?) 책이다.

풀이라고 하면 이현주 목사님께서 손사래를 치실 것이고, 그저 하느님과 목사님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그 속에는 수피즘도 녹아있고, 노자의 말씀도 들리고, 부처의 깨달음도 살아있다.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으로 어우른 책이다.

마르코 복음에서 가장 기억할 말이 이 말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

이 한 마디는 모든 종교의 기본이자, 끝이다. 하느님께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에도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그윽한 눈길로 사물과 사물의 상하좌우를 함께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수련의 열쇠도 깨어 있음이다.

자기가 거지인 줄 알고있는 왕자는 거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기의 형식은 거지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왕자임을 깨달은 부처님은 항상 깨어있는 자의 표본이 아니셨던가.

깨어있지 못한 자는 물질을 근본으로 삼고,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 손익을 계산하게 된다. 손익을 계산하면 흥정이 이뤄지고, 욕심이 생겨, 어떤 흥정이든 그 자체로서 이미 진실과 사랑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성경 앞에 앉을 때마다 마음을 미우고, 맑은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는 감사한 책이다. 어디 먼 하늘 꼭대기, 있지도 않은 하늘 나라를 공상하지 말고, 우리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는 하늘나라를 깨달을 수 있게 도와준다. 오늘도 이 땅에는 수 많은 겨자씨가 묻히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듣기 거북한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어디 예수님 말씀에 노자나 석가를 갖다 들이대냐고 말이다.

그러나 쓸데 없는 데 눈길을 두지 말고, 중심에 마음을 둔다면, 그리고 누가 그 말을 어떻게 들을까 염려하지 않고 그 말이 진실한지를 성찰하는 일만 생각하여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등산의 비유는 인상 깊었다. 왜 등산을 하는지... 그 힘든 등산을... 등산 전후에 나는 달라져 있다.
저는 알고 남은 모르게 달라지는 것이다. 꿀맛을 본 벙어리가 꿀맛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꿀맛을 보기 전하고 분명히 달라진 것처럼,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과거형으로 서술된 <현재 진행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깨어서 알아듣고 있어야 할 밖에... 말로 할 수 없는 깨달음의 꿀맛!

스스로 선하거나 악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하느님 말고는 모두가 부분이요 분자이기 때문이다.

오병이어로 수천을 먹이시는 것이 거짓말로 들렸던 내 귀에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귓구멍을 설막고 있었던 것이란다. 맞다. 그저 인간이 입으로 먹을 것만 생각한 내 마음에 오병이어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꿀맛도 모른채...

망막은 모양을 잡아두면 안 된다. 고막도 소리를 간직하면 안 된다. 그것들은 언제나 텅 비어있다.
판단을 간직하거나 잡아두려고 하지 않는 연습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다.
집착하고 소유하려 하면 그것들은 스러지고 나를 망치고 마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듯이...

하느님은 되는 일을 저절로 되게 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려 한다. 그게 욕심이고, 그것이 파멸을 가져 온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제가 만든 눈으로 나와 저 자신을 보는 자는 내 사람이 아니요,
내가 만들어준 눈으로 나와 저 자신을 보는 자만이 내 사람이다.

옳고, 옳고, 정말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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