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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신화'란 이런 말로 쓰인다.
논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것인데도 그 구성원들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런 것을 '사회 내 신화'라고 한다.
이순신,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도 신화다. 이승만을 박사라고 부르는 것도 신화다. 한국 사회는 이런 '사회 내 신화' 투성이다.
왜 한국 사회는 '경쟁 일변도의 사회'로 변해왔을까? 그 근원은 무엇일까? 막연하게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이후의 전쟁과 가난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박노자는 끈질기다.
기존의 에세이들과 평론들과는 격이 다른 글이다. 솔직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은 '프롤로그' 정도다.
우승, 열패는 우열, 승패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더 많이 쓰인다. 잘나고 못난, 그리고 이기고 지는 그것이 경쟁의 결과이므로 이런 제목을 붙인 듯 하다.
근대로 일컬어지는 19세기 말부터 양계초(양치차오)로부터 시작된 힘의 권력론. 바로 사회진화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론은 우리 옆에 놓여 있었다.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던 구한말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일본은 '동양의 낙원'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동양의 낙원인 일본에서 살고 싶다. 윤치호)
미개한 한국인을 지도하여 근대적인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도구로서의 <지도>. 한국인을 재탄생시켜 새로운 존재로 변모시키겠다는 신문, '독립신문을 쓴 사람은 '한국의 볼테르'라고 불리는 한국 최초의 언어 민족주의자 서재필이다.
'외국 전문가의 지도 하에 한국의 자원을 속히 개발한다. 서재필)
이광수처럼 힘있는 논객이 <힘이 있는 중추 계급이 우둔한 대중을 완전 개조>하려는 파시즘과 서재필식 개화 담론은 <파시즘>이 되어 박정희의 머릿속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국민교육헌장, 조기청소, 새마을운동 등 국민 개조와 사회 진화를 도모했던 일련의 사태는 미리 예견된 사회의 전개 과정이었던 것이다.
박노자는 한용운의 공약 3장과 <자유>를 원하는 글을 실어 한국의 숨은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꽃과 새도 그 자유를 속박하면 그 기능과 취미를 잃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자유가 없으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한용운)
해방과 분단을 겪으면서 남한 땅에서는 실증 사학의 거두 이병도가 남아서 역사 서술의 전통을 <북괴보다 우세한, 부강한 남한 만들기>라는 민족 중흥의 폭압적 근대화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살아 남게 된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서 어린 나이부터 무한 경쟁에 투입되어 끝없는 열패감만을 느끼게 되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이런 글들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박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인의 일그러진 초상은 박노자라는 거울을 깨버린다고 해서 바로 잡힌 것은 아니리라. 이렇게 흐린 거울에 비쳐 보는 일이 반복되어야 크게 바로잡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