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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교육의 길찾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남학생들은 두런두런 떠들다가 혼났고, 여학생들은 쪽지를 돌리다가 걸려 혼났다.
날마다 떠드는 남학생들, 쪽지파 여학생들과의 전쟁이었던 것 같다.
이제 생각하면, 쉬는 시간 10분은 그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짧았고, 새파란 교사는 전혀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졸업한 지 1주일만에 교단에 섰으니, 어찌 권위가 설 수 있었으랴?)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도 많이 변했다. 일반계 아이들은 10분 정도 일찍 수업을 마쳐주면 팍, 엎어져 잠이 들지만, 실업계 아이들은 수업을 일찍 마치면 논다. 전에는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고스톱을 치더니, 요즘엔 좀더 복잡한 게임을 하거나 dmb 폰을 본다.
난 dmb란 글자를 보면, 귀먹은 dumb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미지로 봐서 헤드폰을 끼고 있는 웃는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 d^^b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브로드캐스팅의 준말이 디엠비란다.
보아가 id : peace B에서 흘러내린 물은 다시 올라갈 수 없단 걸 우린 알고 있다고 노래한 것이 벌써 5년 됐다. 진정 변해버린 세상을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이제 수업에서도 매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교육의 내용에 매체의 올바른 이해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용건만 간단히 하던 예전 통화와는 상관없이, 이젠 수시로 보내는 문자와 메신저로 친구와 시공을 뛰어넘는다. 그 비용은 무료다. 곧 무료 통화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흘러내린 물을 되돌릴 생각보다는, 물을 따라 가야 한다.
국어 교과서를 꼭 가르쳐야 한다. 국어는 중요한 과목이다... 이런 신화가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화도 먹히는 시절이 있고, 안 먹히는 시절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의 국어 연구자들이 '매체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같지만, '매체'에 대한 관점과 활동은 서로 다른 면도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메신저를 통한 토론, 디엠비 폰으로 영화 감상하고 비평문 쓰기 같은 활동이 가능해 진 현실까지 반영한다면 이 책은 여전히 진행중인 책으로 보인다.
교육은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기존의 국어 교과서는 <사고>의 폭을 <이해>에 제한한 느낌이 크다. <비판>적 사고, <창조>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과서는 없을까?
기존의 교과서가 <정전>으로 일컬어지는 중립적 가치를 지닌 문학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고, 창의적이지 않은 평범해서 너무 재미가 없는 설명문들을 간혹 실어 두었기 때문에 죽은 교과서였다면, 이 책에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수업을 발견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중립은 이미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것이라는 말만큼 진실은 없다. 교과서에 수록된 <삼대>의 염상섭은 일제 시대 부유층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록된 것이므로 부르조아적 세계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 방송등의 제재는 비판의 여지가 적다. 비판을 가한다 하더라도 가면을 쓰고 철학적으로 근거를 댄 비판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비판은 가차없다. 익명성의 이름으로 즉자적이고 원색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다.
기존의 문화는 고급 문화를 가리키는 상위 가치적 용어로 쓰였지만, 이제 문화라고 하면 대중 문화를 포함하는 저급한 문화도 포괄해야 한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의 두뇌는 원래 '파편화'된 사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 언어 교육에 대한 우월감에 빠져있는 대다수의 교사들에게, 블로그와 싸이 홈피, 버디버디 메신저로 무장한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은 끝없이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지식 교육은 당연히 해야하고,
텍스트 이해를 통한 맥락 파악,
의미 평가, 재구성을 통한 비판적 접근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연관지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국어교사모임의 매체연구부에 박수를 보내며,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