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 1
박형진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술자리에서 가장 좋은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다.

이 책에는 변산 모항의 농사꾼, 어부들의 모습이 구수한 뚝배기에 담긴 짜글짜글한 찌개처럼, 기름 잘 둘러 툽툽하게 구워낸 지짐 모양으로 맛갈지게 들어 있다.

쭈꾸미 통신보다는 입말이 살아 있지 않아서 박형진의 글솜씨를 함뿍 느끼기는 어렵지만, 시골서 살아가는 그의 삶 속에서 인간 냄새가 폭신폭신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운동>임을 깨달았던 그는 온몸으로 운동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줄포를 읍내로, 부안을 시내로 생각하는 변산 시골 사람들의 웃고 우는 삶들이 풋풋한 보리 물결 사이로, 위도 너머 불어오는 비릿한 앞장불 바닷내음을 타고 펼쳐진다.

어느 마을에나 있는 좀 모지라지만 인정 많은 고막녀,
늘 시대를 앞서 사는 봉구 형님,
뭇사내들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봉니 누님,
천하의 술꾼 서금용씨...

그들이 보고 잪어서 욕 들어 가면서도 찾아가는 그들의 삶은 도시것들이 봐서는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것인지 몰라도, 사람 내음 진동하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삶이 아니겠는가.

"오사 잡놈들 다 가버링게 잡년들도 다 가부렀어, 시방 어디 있가니? 그런 사람들..."
이렇게 살아있는 언어로 욕을 하는 주모의 말을 안주삼아 쓴 책은 막걸리 몇 통을 비우고도 남을 정도로 술맛 당기게 한다.

"삼형제 썩은 물(누럭, 밥, 물의 삼형제가 썩어 술이 된다는 우스개)도 주까?"
"엊지녁에 뭣 처먹고 놀았어? 아, 속푼담서 그것도 안 먹고 복쟁이만 처먹을라고?"

이런 욕쟁이 주모 한 사람쯤 인간 문화재로 남아야 막걸리 맛이 제대로 푸지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잃어가는 우리 것, 우리 곡식이 안타까워 기록으로 남긴 박형진씨의 글들이 소중하기만 한데, 고추장, 된장,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여인네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과연 우리 나라 아이들의 냄새를 얼마나 풍길는지... 요즘 아이들은 별로 사투리도 쓰지 않는데, 서울 공화국이 전국을 덮어 버리고 획일화 시켜버리는 거나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든다.

국립국어 연구원에서 매달 퀴즈를 내는데, 먹는 밥이 아닌 것으로 가래밥을 들었다. 가래질 할 때 나오는 흙을 가래밥이라는 설명인데, 변산에선 쑥, 덜 익은 보리 간 것, 송기 등을 갈아 죽밥을 만들어 먹는데 이것을 가래밥이라고 한단다. 보릿고개의 잔인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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