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 : 털 끝에 놓인 태산을 어이할까 - 삶의 등불이 되는 고전의 지혜 윤재근의 장자 2
윤재근 지음 / 나들목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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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쯤 전에 서울가는 버스 안에서 읽으려고 1권을 사 뒀는데,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책들을 요즘 다시 읽는 맛은 색다른 맛이 있다.

집에서 1권을 읽고 있고, 학교에서 2권을 읽었는데, 역시 바쁘게 일하는 중에 읽는 맛이 있다. 집에서는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장점은 장자라는 텍스트를 해체하여 나름대로 양념을 해서 우리에게 권해준다는 것이다.

장자의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들, 뭔가 비꼬이고 반어적인데 그 의미를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장자를 인물을 중심으로 의미를 슬쩍슬쩍 짚어 준다.

어느 시대나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하고 말한다고 하듯이, 춘추시대 그 옛날에도 분별과 시비의 병을 퍼뜨린 유가의 도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자는, 눈으로는 미인과 명품만을 추구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만을 밝히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한 텍스트임을 잘 풀어 준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인위는 욕심 자루 가득하게 교환 가치를 끝없이 따지는 것이다.

사람도 <좀 더 나은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면서 견적을 뽑아 수술을 하고, 학벌을 만들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끝없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서가 <인적 자원>으로 아이들을 파악하고 있을까...

<자연스러운...>과 <사람다운...> 사이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있는데, 갈수록 <사람다운...> 쪽으로 편입되기 위하여 많은 투입량이 소요되는 듯 하다.

목수가 선비의 글을 보고 <찌꺼기>라고 했다는 말은 참 통쾌한 맛이 있다. 중요한 것은 몸으로 터득해야지 글이나 말로 전할 수 없다는 진실을... 요리책을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도, 그 손맛의 대충대충, 적당히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치다.

편안하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은 대체로 덕이 아니다. 덕이 아니면서 오래 가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은 자꾸 나를 편안함과 즐거움보다는 질서와 체제 속으로 끌어 들이려 한다. 남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경쟁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날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기계를 가진 자는 기계에 따른 일이 반드시 생기고, 기계에 얽매이는 마음이 생긴다.

컴퓨터가 버벅거리면 짜증이 나고, 자동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속이 상한다. 機心(기심)은 인위적인 인간의 가장 큰 속성인 것이다.

건널목을 건너는 영감님이 강아지를 몰고 가는데, 개줄과 손잡이를 멋진 것으로 사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감님을 보는 순간, 강아지와 개줄과 손잡이에 영감님이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의 네 발로 걷는 자연스러움을 버리고, 인간은 자꾸 코뚜레를 잡는 것을 추구한다. 코뚜레가 아무리 아름답다손 치더라고, 소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거늘...

무슨 일을 하면서도 안 하는 것처럼 하는 것만큼 사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뛰어난 재주는 서툴러 보이듯이, 뭔지 서툴러 보이게 하여 남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자연주의 처세술이다.

입맛을 잃어가는 세상에, 씀바귀를 먹어 입맛을 회복하듯, 장자는 맛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밑바닥부터 반성하게 한다. 결국 장자라는 텍스트도 쓸모가 없다. 세상의 도는 <말할 수 있는 것>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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