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하늘 2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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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태백산맥을 읽을 때, 죽산댁(염상진 아내)이 경찰서에 가서 빨갱이 신랑이 오면 어쩔거냐는 닥달에

"내빌라도야제라."하고 대답하는 것을 읽고 무슨 뜻인지 선뜻 들어오지 않아 한참을 쳐다본 일이 있다.

나중에 따져 보니 "내비(내버려) 놔둬야지요" 하는 뜻이었다.

아마도 경상도 이외의 지역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꽤 많을 듯 싶다.

"씨버 어예 먹을리껴."/ "씨버도 먹어야제."(써서 어찌 먹으려고.  써도 먹어야지.)

"그기 막카 지주금 팔잔데 어얄 수 없제."(그것이 모두 제각기 팔자이니 어쩔 수 없지."

이런 방언의 보고로서도 이 소설의 가치는 높다.

점점 서울로만 획일화되어 가는 판국에 제 지방의 방언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은 일이다. 돈만 밝히는 세상에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시간 들이는 사람도 구하기 힘들고...

이 소설은 경북 안동 지방의 방언이 특색적으로 잘 드러난다.

그리고 <꼼꼼 오월, 미끈당 유월, 어정 칠월, 둥둥 팔월, 설렁 구월> 같은 농사와 관련된 문화도 배울 수 있는 기록이다.

팍팍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가득가득 눈물로 들어차서 서럽기 그지없지만, 권정생 선생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 놓은 전쟁이나 같>아서 이래서야 어떻게 살아 가나... 싶은 사람들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삼밭골 사람들은 바람에 날려가듯이, 물결에 흘러가듯이, 그러면서도 작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올라오는 씀바귀 풀처럼 살았다. 밟히면 뭉드러지고 쥐어뜯기면 뜯긴 채로 다시 촉을 틔우고 꽃피고 씨앗을 맺어 훨훨 바람에 날려 보내는 씀바귀 씨같이 자손을 퍼뜨렸다.>

한티재 하늘을 읽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도 지지리 궁상이고 못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배워서, 도리를 차리고, 남을 다스리고 잰체하는 사람들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꺾이면 꺾이는 대로, 밟히면 밟히는 대로, 그렇게 무위 하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실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선생님의 건강이 빨리 더 좋아져서 이 작품이 더 풍부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란 시에서처럼,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으로 살 날은 언제일까...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 대포도 안 만들테고 / 탱크도 안 만들테고 /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 (중략)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더 많은 것을 아끼고 / 사랑하며 살 것이고 // 세상은 아름답고 / 따사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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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故 권정생 선생님을 추모하며...
    from 파피루스 2008-05-18 09:26 
    2007년 5월 17일, 10억여 원의 인세 수익금과 다섯 평짜리 흙집을 남기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 곁으로 가신 동화 작가 권정생님. 바로 오늘은 하늘로 돌아가신지 1년이 됩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기고 가신 선생님을 기리며, 선생님께서 남기셨던 유언을 올려봅니다. 살아 생전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동화를 선물해 주셨던 선생님은, 유언에서도 우리들에게 아름다움과 부끄러움을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