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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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도서관엘 가면 눈에 밟히던 소설이었다. 한 권이었다면 진즉 빌려 보았을 것인데, 두 권이라 아무래도 쉽게 손을 대지 않았던 모양이다.

권정생 님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대부분 동화류거나 순수한 생각을 적을 글들이었는데, 이런 장편 소설이 주는 감동은 참 오랜만이었다.

조정래같은 사람이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쓸 때, 어깨 힘 빡! 주고,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외에도 턱도 없는 역사 인식으로 역사 소설 나부랑이를 쓰는 작가들이 숱하게 장사할 때,
권정생 선생님은 조용조용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 준다.

처가를 가던 길에 한티 터널이란 굴을 빠져나가면서, 아, 이 동네 참 조용하다~는 생각과 한티는 한치를 생각나게 한다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읽다 보니 이 글의 한티가 바로 그 한티임을 알게 된다. 에둘러서 만나는 삶의 우연. 내가 숱하게 지났던 그 길에 얹힌 이야기와 살림들.

그 하늘이 내려다 보았을 사람들의 팍팍하고 인정스럽고, 눈물겹고 욕나오는 살림살이들이 오밀조밀하게 엮여 있다.

이 글은 서사(이야기)이면서도 꽤나 서정적이고, 들려주는 이야기인데고,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백으로 푸념을 늘어 놓기라도 하는 듯하다.

이것이 인생이다... 하는 인생 극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 곡선이 그리는 굴곡을 분들네, 정원, 조석... 등의 숱한 이름에 얹어 펼쳐 보여준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아름다운 시절'처럼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클로즈업 없이 먼 거리에서 평면적으로 영화를 찍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들리잖는... 그런 것이 인생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지.

경북 안동 지역의 -니껴? -니더.처럼 살가운 사투리들이 투박스레 들리지만, 양증맞은 서울말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민초들의 살림을 더없이 여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이 사투리들이다.

권정생 님처럼 나이드신 분들이 이룰 수 있는 문학의 경지를 읽을 수 있다.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앞날이 어찌 된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람은 죽지 않고 사는지도 모른다.

태어나 얽히며 살고, 아프고 병들고 죽는 일들이 중복되고 겹쳐지는 복합 구성의 장편 소설의 연장이 바로 우리 삶이란 것일진대, 따져 보면 10마디 20마디 안에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그리고 끽해야 백 년도 못 사는 것이 인생일진댄, 아둥바둥 욕심 차리며 살 일 없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삶이란 이렇게 제 눈앞도 볼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하느님의 뜻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란 말인지... 한티재 하늘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들은 오늘도 묵묵 부답이다.

한 일 주일 침대머리에 두고 질기게 읽을 책을 구한다면, 두 권이지만 다단한 삶의 모습들과 역사의 흐름을 담고 있는 한티재 하늘을 권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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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故 권정생 선생님을 추모하며...
    from 파피루스 2008-05-17 17:00 
    2007년 5월 17일, 10억여 원의 인세 수익금과 다섯 평짜리 흙집을 남기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 곁으로 가신 동화 작가 권정생님. 바로 오늘은 하늘로 돌아가신지 1년이 됩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기고 가신 선생님을 기리며, 선생님께서 남기셨던 유언을 올려봅니다. 살아 생전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동화를 선물해 주셨던 선생님은, 유언에서도 우리들에게 아름다움과 부끄러움을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