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 열림원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울지 말아라 동무야
멀고먼 길
발은 부르트고
무릎은 깊게 깨어져
피멍이 들었구나
어이 쉬 잠들 수 있겠느냐
별들의 눈말울은 초롱초롱
바람은 초저녁부터
라일락 꽃가지를 흔들었네
잠들어라 동무야
사랑의 날이 올 때까지
동무야(자장가 - 귀정에게)
고 김귀정 열사 추모비
1991년 민자당 야합 후, 민자당 반대 집회가 거세지자
시위를 강경진압하다 희생시킨 귀정 열사...
아, 이름만 들어도 그 시대가 막막하게 다가온다.
노태우 김종필... 이 개새끼들... 김영삼, 비겁했던 위인... 그 시대가...
<김귀정 관련 포스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73713&memberNo=1990002&vType=VERTICAL
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 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
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계단을 밟고
내 오막살이집을 찾을 때
있겠지요
설령 그때 내게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이 찾아와
자, 이게 네가 그 동안 목마르게 찾았던 그 물건이야
하며 막 봇짐을 푸는 순간이라 해도
난 당신이 내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신과는 상관없이
강변 숲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곽재구, 계단-연화리시편 5>
곽재구의 말은 다정하다.
강물처럼 잔잔하다.
곽재구가 타고르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한때 여행 자유화가 되었을 때,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그 막연한 이름들의 땅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가서 본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이십 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지만,
타고르처럼 잔잔해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가끔 김귀정같은 시를 만나면 반갑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고
깊게 사랑했던
사람 떠나간 뒤
젖은 눈 앞에
상처받은 세상의 끝이 보일 때
타고르
연화리로 와요(쓸쓸한 날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