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후 빨랫감 - 깨달음, 그 뒤의 이야기들
잭 콘필드 지음, 이균형 옮김 / 한문화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영적인 깨달음은 종지형으로 착각되고 있다.

부처가 깨닫고 더는 혼란에 빠지지 않은 듯이 생각하는 것. 완벽한 천국이 도래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데서 오는 미망이다.

부처의 깨달음이 무상무등정각인 이유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마음 잡히는 곳이 없어야 이 곧 벗어남이라 할 수 있는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빨랫감으로 보이는 일들이 있다면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고 해야겠지.

깨달음이라고 착각되는 엑스타시를 겪었다 치더라도, 늘 그렇지는 않다는 것.

'내려 놓으라, 내려 놓으라, 내려 놓으라.'는 말밖에 되뇔 줄 모르는 지렁이가 되는 것. 이 궁색하기 짝이없는 수행법이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라는 것. 이것을 깨달은 것이 부처님의 법인 것이다.

매 순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속에서 깨어있고 자유롭게 존재하는 나를 추구하는 공부는 그래서 쉬임없어야 하는 것이리라.

연꽃 속의 보석(옴 마니 밧메 훔)을 발견하기 위하여...
별 셋에 반달(마음 심 心)이 곧 부처되는 하나의 길임을 잊지 않고 성성적적 깨어있기 위하여...

결국 깨달음은 이전도 이후도 없는 것임을, 상 없음을 매 순간 생각하며 살아야함을 되뇌어 반복함이 빨랫감을 사랑하게 되는 길임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서양인이 쓴 책이라 그런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자꾸 눈에 보인다. 그래서 별 하나 감점.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님께서 한 번에 한 사람씩 사랑할 수밖에 없다시던 말씀이, 곧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다른 수행의 길은 없음을 가르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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