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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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책은 그의 다양한 글들을 모아서 낸 책들이 많아서,

칼럼들을 읽노라면 시대적으로 이미 오래 전에 시사성이 사라진 글들 많아서

몇 년 지난 시평들에 시들해지곤 했는데,

이 책은 그런 글들에서 가려 모았는지

날카로운 그의 성찰 의식을 보여주는 글들이 많아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글들이 어디서 어떻게 모은 것인지를 편집자의 말 정도로 붙여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다.

좀 아쉽다.

 

제목부터 역설로 가득하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고독 solitude 과 외로움 loneliness 는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

 

고독과 외로움은 유의어이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고독은 주체적인 침잠이고, 외로움은 상황에서 오는 결핍감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일은 기본적으로 '개인'을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내 의지에 따라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가족이나 학연, 직장 등에서 너무 <가족의식>이 강하다. 좀 피곤하다.

 

무엇보다 지난 9년간 나라가 참 엉망이었다.

민중은 억압받았고 지식인은 침묵을 강요받았으며,

예술은 지원받지 못했고, 권력자들은 제멋대로 돈을 챙겼다.

 

예술은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예술이 바로 혁명이다.

 

역설을 잘 쓴다.

김기춘이란 병자는 요즘 불쌍 컨셉트를 구사하더구만,

조윤선이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예술가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혁명을 막겠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두고두고 이런일이 없도록 강력 처벌해야 한다.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

 

이 나라에 태어나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진 자들은 지난 겨울 참 힘든 감격을 얻었다.

그래서 쓰는 이들도 태도가 명확해야 한다.

 

전쟁이 사악한 것은 대규모의 폭력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가장 공공연한 착취극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언제나 벌이는 놈과 치르는 놈이 따로 있다.

 

군대와 감옥을 보면 그 나라 수준을 알 수 있다 한다.

부잣집 아들, 국회의원 아들은 군대를 안 간다.

가난한 집 아들들은 그 치욕스런 군대에 가서 상처를 입는다.(치욕은 가서 당해봐야 안다.)

감옥 가서도 닭은 대접을 받고 있다. 민중의 자식들은 성폭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전쟁은 늘 가난한 집의 청소년들이 희생되는 일이었다.

지금도 가난한 집의 청소년들은 군대에서 월급 십여 만원 받고 뺑이치고 있다.

 

역사의식이 없다면 현실도 없다.

 

이걸 가장 잘 아는 것들이 권력자들이다.

그래서 쥐박이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없앴고, 닭년은 '국정'을 밀어붙이면서

역사의식 호도를 위해 '수능에서 한국사 필수'라는 더러운 짓을 벌였다.

수능은 전과목이 선택인데, 한국사를 응시하지 않으면 점수가 안 나온다는 어불성설을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닭년을 엄벌에 처해야, 현실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역사에 밝고 시사에 어두운 사람은 허화하다.

시사에 밝고 역사에 어두운 사람은 경박하다.

 

조선 시대 과거 봤으면 대구를 잘 쓸 사람이다.

고개가 끄덕여 진다.

종편에 보면 경박한 인간들이 많이 나온다.

 

다만 글이 나온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가 민중(인민)에 대해서 믿음이 적어 보이는 구절들이 있었다.

이 나라 민중의 계급의식이 미약한 것은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기능론자들에 의해서 갈등 유발하지 말고 찍소리 말고 있어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교육을 했으니

민중의 주장은 늘 소외당했다.

노조가 강성이어서 나쁘다, 노조가 귀족적이어서 나쁘다고 말하지만,

노조는 국가에 억압받아서 피곤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 교육의 실패는 나쁜 정치가들이 조장한 것이다. 의도적이로.

 

현명한 사람 중에,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

매사에 남 탓만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오늘 인민이 사회적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회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 밖에 있다.

 

지식인과 민중을 나눈 것은 1980년대 수준에 머무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제 민중은 지식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겨울 인민의 분노를 보고 김규항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인민은 지식인이 필요없다.

아무리 종편이 흔들어도 이제 국민의 힘은 80%의 지지를 철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 힘은 인민의 민주주의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다.

 

역사에서 보듯, 청년들이 극우의 우물을 찾는 건

보수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진보가 희망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이런 말에는 좀 시비를 걸고 싶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쥐와 닭은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며 폭정을 가한 실패한 권력자였다.

친일파를 이용해먹었고, 분단을 이용해 국가를 해체한 개새끼들이었다.

그들을 보수라 여기고 자유당을 보수라 말하면, 이건 논리가 아니다.

 

공포 사회에서 누구나 진보는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진보의 희망보다는 보수의 밥줄이 편하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아주 오랜 억압을 견딘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 역사 30년만에 대통령을 쫓아낸 이 힘은,

이제 제대로 된 보수를 시작할 기회이기도 하다.

진보가 활개를 펴려면, 상식적인 보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일체의 합리적 현실적 노력은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단정한 생각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노력의 출발점이다.

 

뭔가 금강경을 읽고있는 느낌이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는...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영성을 도외시한 혁명도,

                           혁명을 도외시한 영성도 아닌,

                           혁명과 영성의 자리를

수다와 상업주의적 짜증이 대체해버렸다는 것.

 

이것도 수정하고 싶다.

'알뜰신잡'이나 '썰전' 같은 수다는 짜증을 넘어서는 예능이 될 수 있다.

 

이 나라의 영성은 '전쟁에서 빨갱이로 매도되는 일'의 공포를 벗어나는 일로 쓰이고 말아

구교, 신교, 한국교회라는 범주의 변화를 일으켰다.

이 나라의 혁명은 3.1운동, 4.19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광주와 6월 항쟁, 촛불 항쟁을 거치면서 그 혁명의 정신을 간직해왔다.

 

한국에서의 제대로된 역사 교육은 아주 중요하다.

교사들조차 친일 사관에 묶여있는 경우가 많고,

공포에 짓눌려 있는 사람이 많다.

 

공포는 나쁜 정치가가 의도하는 것이다.

이제 공포는 사라져야 한다.

 

좋은 책이다.

생각이 넓어질 수 있게 하는 책이고,

읽기 쉬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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