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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ㅣ 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누구에게나 좋은 시란 건 없겠지만,
나에게 좋은 시는 언어가 구체성을 띠고 마음에 감겨드는 것들이다.
한용운의 시들이 그렇고, 신경림의 시편들이 그렇다.
윤동주의 많은 시들이 그렇고, 장석남의 몇몇 시가 그렇다.
안미옥의 '온'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온전하다의 '온'인지,
따스한 온기의 '온'인지,
하나도 빠지지 않은 통째로의 '온새미로'의 '온'인지,
아니면, 이미 와버린 '온'인지를 알 수 없는데,
시를 읽어도 그 형상은 구체화되지 않는다.
나는 재미없는 것만 기억한다
끝나는 것을 끝까지 본다(나의 문)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생일 편지)
시인이 좀더 구체를 획득하면 좋겠다.
'찢긴 것' '썩은 나무토막', '검은 연기', '비틀리고 뒤집히고' 같은 시어들은
시어이기보다는 형용사다.
시어는 그림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게 좋아 보인다.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시집)
그 마음의 일을 묘사하고
생생하게 독자에게 꽂는 자가 시인이다.
끔찍하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끔찍할 수밖에 없던 세상을
광화문에서 울부짖던 노란 점퍼들과
아스팔트에서 노숙하던 국회의원을 그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시집이 당신에게도 조금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든 곳으로 오는 시를 생각한다.
모든 곳에, 백가지의 모습으로.(시인의 말)
지난 겨울 모두들 용기를 내서
추위를 이겨냈다.
아직도 멀었으나, 이제 빛이 비친다.
시도 좀더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사람들에겐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수히 많은
노란 리듬 때문(램프)
노란 리본을 떠올리기는 쉽다.
물에 번지는 이름
살아 있자고 했다(아이에게)
시 제목도, 시도 아직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세월호라는 호명이 아직도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고,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들은 아직도
왜 기레기들이 구조에 열을 올린다고 거짓말을 일삼았는지,
왜 십여 명 희생에 머물 것을 삼백 명을 수장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에게 읽히는 노란 리듬의 편린들은
그래서 막막하게 터지는 한숨이기보다는,
얼룽얼룽대는 아지랭이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