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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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판사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법원에 갈 일이 없어 실감하진 못하지만,

이 책에서 미스 함무라비 외엔 여성 법관도, 검사나 변호사도 등장하지 않아 좀 유감.

 

반면 성추행 피해자나 남편 살해범이된 주폭의 피해자였던 아내,

여성은 주로 이렇게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참여 재판에서도,

대학원생인 여성이나 찔찔 자는 여성에 비해

주체적으로 나서는 할아버지같은 면에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피고인 박근혜를 대통령님이라 부르는 어수룩한 변호사가 있다더라만,

피고를 피고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나 했는데,

법원 안에서는 판사고, 검사고 변호사이지

개인적인 선후배나 안면있는 사이임이 드러나서는 공정성에 저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긍을 했다.

저울든 심판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정의도 한정된 자원.

 

세상이 너무 바쁘다.

판사도 너무 바쁘고 의사도 너무 바쁘고 교사도 너무 바쁘다.

그 사이에 일은 있는데 '사람'은 어디 갔나?

판사에게 경제성의 논리는 재판받는 사람에겐 불성실, 불공정, 불합리로 비칠 수 있다.

판사나 의사나 교사 입장이라면 한정된 자원에 대해 힘겨움을 토론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언론에 나오는 거창한, 튀는 사건들.

하지만 대다수의 일하는 이들은 화려하지 않고 튀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있다.(85)

 

이것이 저자의 집필 의도이리라.

그건 어느 분야든 그럴 것이다.

판사들이 서류 보퉁이를 들고 다닌다는 고충,

젊은 여성들은 그걸 캐리어에 넣더라는 깨달음.

 

판사는 신이 아니야.

결과적으로 결론이 틀렸다 해도,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최선을 다했고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되는 거야.(327)

 

그렇지만 후배에게 크게 도움주는 위로는 못 된다.

힘들 때, 어떤 위로도 도움되지 않는다.

다만 곁에서 무릎을 빌려주는 후배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판사는 무력감을 느끼며 정답이 없는 안갯속을 헤쳐나간다.

판사는 도로,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일 뿐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기능한다.

그 법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386)

 

거짓말이다.

어느 국민도 휠체어탄 이건희가, 김승연이, 정몽구가, 그리고 탑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공정하게 심판받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면,

나머지 4999만인 앞에는 불평등하다는 농담도 있듯,

법은 너무도 권력의 편을 드는 개가 되어왔다.

 

검찰을 섹검, 떡검으로 부르듯, 조롱당해도 반성해야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은 평범하게 살겠지만...

지금은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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