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 판미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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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좋은 질문>을 담고 있다.

작품을 읽고 나서 <좋은 질문>을 가진 작가임을 알게 되면 그 작품이 사랑스럽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노라면,

시란 어떤 것이며, 어떤 힘을 가진 것인지,

시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뜨게 하는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마리오가 "시는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물어도 가르쳐줄 수 없었다.

 

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설명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 뿐이야.”

 

그렇지만 네루다가 떠나가고 마리오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기록하는 눈을 가진 '시인'이 된다.

 

정조의 죽음은 급작스러웠다.

그래서 아무리 정사에서 그의 '병사'를 주장하지만(왜 개새끼들은 병사를 그리 좋아할까?)

그의 사후 순.헌.철종의 3대 60년간,

개새끼들이 나라를 아작낸(최순실이 생각난다) 세도정치가 조선을 완전히 바닥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 노무현이 다 이루지 못하고 남긴 <진보의 미래> 같은 메모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노무현의 '감성'에 눈물흘릴 뿐만 아니라,

문재인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정치의 성공>과 연관지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정조의 '규장각'은 기존의 권력을 가진 노론들과 맞설만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정예부대를 만든 곳이다.

정치를 시키기 전에 젊은 학자들을 가려뽑아 '초계문신'을 만들어 두고,

열심히 토의하고 정견을 발표하게 한다. 그런 발표문이 <책> 또는 <대책>이다.

임금이 <책>을 쓰도록 <물음>을 던지는 것, 곧 논술문의 논제가 <책문>인 셈이다.

 

바른 정치를 위한 고민은 참 많다.

가난을 이겨내야 하고, 국방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어디나 권력을 쥐고 있는 자유당, 국물당같은 존재들이 있는 법.

그들을 확 해체하고 정치를 하면 될 듯 하지만, 임금조차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권력과 부를 오래 가진 자들은 자기들의 방어 시스템이 있어서 쾌도난마의 해법은 없다.

갈등 속에서 바른 정책을 견지해나가야 하는데, 그 일이 참 어렵다.

 

우주 자연의 '기수'에만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인간세상의 이해득실 문제인 '인사'를 잘 처리(21)

 

인사가 만사라 하였다. 결국 일은 인물이 하는 것이다.

올바른 정치의 첫꼭지가 <인사>다.

청문회 시즌인데, 자유당과 국물당이 발목을 잡아보려 안간힘이다. 가증스럽다.

 

고위공직자 사이에 편당을 만드는 풍조가 없어지고

정치에 관심있는 학자들도 편벽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27)

 

중용을 이야기한다.

곧고 바른 중용의 정치.

자기편에 치우친 편당과 같이 가야하는 길은 참 고되다.

 

국가에 언로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 혈맥이 있는 것과 같다.

혈맥이 통하면 편하고 통하지 않으면 위험해진다.

열어서 확장하면 번화가의 큰길처럼 탄탄하고,

막히고 닫힌지 오래도면 꼬불꼬불 굽은 작은 길처럼 어려워진다.(38)

 

세상을 격려하고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는 데는 언론보다 좋은 것은 없다.(150)

 

언론은 그만큼 중요하다.

황교활이가(한번 짤린 총리가 다시 모가지가 붙은 징그런 넘) 대선 직전에 대통령이 임명할 언론위원을 선임했다.

참 교활한 자식이다. 어제 청와대에서 그 위원을 전보시킨 모양이다. 잘한 일이다. 훌륭하다.

 

잠언의 '箴 바늘잠'은 침술에 쓰이는 바늘에서 차용하여 비유한 것으로,

질병을 치료하여 병을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쓰임이 아주 절실하고 중요하다.

잠언이 귀중한 이유는 잘못을 치유하고 허물을 깨우쳐 주는 데 있다.(67)

 

좋은 말은 사람을 낫게 한다.

요즘 하찮은 '대통령 기념사'를 읽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연례행사로 대통령이 하는 기념사를 여러 번 읽고 눈물을 흘릴 때는,

그 쓰임이 치유와 깨우침에 잘 쓰이고 있어서다. 좋은 일이다.

 

군주의 올바른 왕도는 오직 '의'를 취하기 때문에 황금에 비유되고,

그릇된 패도는 오직 '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무쇠에 비유된다.(74)

 

촛불 국민을 바라보고 간다는 것은 '의'에 해당한다.

대기업이나 자유당과 연정을 하는 것에는 '리'에 치우칠 수 있다.

구속된 박씨는 '리'에 치우친 인간이다.

 

우리나라는 의외로 아주 협소하다.

온 나라를 통틀어 현명한 인재를 선발하려 해도 인재가 많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이 좁은 땅에서 또 서얼을 제거한다면

인재의 절반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120)

 

이 책을 청와대에서 열독했으면 좋겠다.

고민정의 말처럼 문자 중독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책을 읽고 논하는 것이다.

 

현실을 두려워하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언행이 당당하지 못한 것을 고식이라 한다.

고식의 상황에서는 지금당장 별 탈이 없고 편안할 수 있다.

이런 자세 때문에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교육도 발전되지 않는다.(131)

 

장관이란 여자가 드라마나 권해주는 것이 고식이다.

말도 안 되는 지시를 깨알같이 받아적는 공무원들이 고식이다.

임종석처럼 권력 앞에서 웃기도 하고 직언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밤낮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시대정신을 만회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은 마음과 어긋나고, 정치는 의도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다스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망망하여 끝도 없어 보인다.

인자한 하늘은 위에서 경고하고 일반 백성은 아래에서 원망하고 한탄한다.

나라가 정말 걱정스럽다.

그러면서 태연한 척 조심하는 척하며 구차하게 하루라도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다.(183)

 

이렇게 어려운 자리다.

드라마나 쳐다봐서는 안 되는 자리다.

 

모두가 나라의 정치를 거스르지 않고 따라오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공적이건 사적이건 현재의 정책을 수준 높은 문장과 품위있는 저술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232)

 

인간의 길을 담고 있는 문장이 가장 좋다.

그 이하라 할지라도 반드시 내면에 학식이 쌓여야 외부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그럴 때 자연스러움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고

기이함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이해진다.(240)

 

품위있는 문장은 품위있는 철학에서 나온다.

이전 권력자가 '대박'이라든가 '우주가 도와준다' 같은 천박한 말을 지껄인 데는

그 천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다시 들으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가 너무 앞선 생각을 말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기 이미 앞서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어에 쓰인 말은 가까우나 뜻은 멀다.

말은 끝이 있지만 뜻은 무궁하다.

끝이 있는 것은 훈고에서 찾고 무궁한 것은 정신으로 이해해야 한다.(301)

 

고전을 읽는 일은 큰 공부다.

정치가는 읽고 읽어야 한다.

 

답답한 가슴 속앓이에 약은 효험이 없었는데

이 남령초만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화기로 한담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스레 없어졌고,

연기의 진책이 폐장을 맑게 하여 밤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362)

 

담배를 참 맛있게 피우시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 막히셨을까...

 

지금 한 달 맞은 대통령도 얼마나 힘들까.

그나마 세상이 좀 진정되니 이런 책이 읽힌다.

 

고마운 일이다.

장르 소설에나 코를 박고 있던 지난 몇 년이 참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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