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럿 읽었는데, 무라카미 류는 처음이다.

전에 읽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제목이 야하다. ㅋ

무려 69라니...

 

김해경이란 시인이 '이상'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69'라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요즘말로 '싸이'라는 예명쯤 되겠는데, 그 당시에 69라니... ㅋㅋ 심했다.

69는 이런 포즈를 뜻하는 말이다.

 

세계사에서 68 혁명의 시대라는 말도 있듯이,

전 세계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도덕에 대하여 저항하고 있던 시대 정신을 일컫는 시대가

일본에선 69로 지칭된다.

 

한국이야 그 시대에 1968.12.5... 이런 거 외우던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었던 암흑기였고...

 

청소년들의 좌충우돌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소설이다.

 

이 당시부터 나는 타인을 속이는 기술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때

상대가 모르는 세계를 일부러 내세우는 것이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79)

 

청년들의 황당한 좌충우돌은

시대에 휩쓸려 투쟁으로 휘말리기도 한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88)

 

히틀러도 그러했지만, 권력 쟁취에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사람들의 눈물보를 터뜨린 노무현이 그랬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나 '노무현입니다'에서는

그의 상상력이 결국 문재인을 만들었다는 결론을 얻게 한다.

 

체제는 풍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한다.(112)

 

학교도 또한 그러하다.

아침에 9시 등교가 그렇게 어렵고,

방학 중 보충학습 없애기가 그렇게 어렵다.

체제는 그 사소한 것에 목을 맨다.

결국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억눌리게 마련.

 

이 소설에서는 청소년들이 점거를 하고,

교장실에서 똥을 싸는 등  저급하게 웃기지만,

상상은 체제를 바꾸고 권력을 쟁취할 무기가 된다.

 

봉쇄를 막다니, 베트남 인민이 매일 몇 명이나 죽는지 아니?

저런 놈들이 난징이나 상하이에서 사람들을 마구 죽였던 거라고.(114)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체제에 반증을 들이밀려는 시도에는

언제나 과감한 일반화가 필요한 법이다.

형사의 방문을 받아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배우게 될 것이다.

불행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

행복은 그 반대로,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한 쌍의 카나리아다.

눈 앞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123)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로 전락하지 않는 건,

이런 통찰이 담겨서일까.

 

놈들이 주장하는 유일한 이상은 안정이다.

진학, 취직, 결혼,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구역질나는 조건이지만, 그것이 의외로 효과를 발휘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진흙 상태와도 같은 고교생들에게는...(141)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146)

 

아,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잪이는 힘이 세다.(지은이의 말 중)

 

유쾌한 청춘물이면서도,

씁쓸한 시대와의 불화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득하다.

시대의 풍조는 달라도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해 갈 것이다.

그리고 먼 후일,

또 이런 글들을 쓸 것이다.

 

적어도, 그때 '정말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버린 선생'으로 기억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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