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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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홀'은 장모가 마당에 판 '구덩이'일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의 '구멍'일 수도 있고,

영어 표기만 없었다면 홀아비, 홀어미, 홀로이 '홀~'로 읽을 수도 있겠다.

 

주인공 오기라는 교수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마비가 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185)

 

이 인간관계의 구멍에서 이루어지는 장모의 복수랄까 그런 것은

치밀하지 못하다.

흥미롭게 전개되던 스토리가 구멍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은 싱겁다.

 

인간은 그런 식의 빈구석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진실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오기는 수업시간이나 강연 때 자주 써먹었다.(180)

 

한국에서 인간관계는 끈끈하게 보이다가도 절벽이 된다.

인간은 그런 고독을 필연적으로 안고 다니는 존재임을

이 사회는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그 결락은 구멍이 되고, 구덩이가 되어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87)

 

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그렇다.

비교하고 엉뚱한 공상을 모델로 삼는다.

그런것이 구멍의 원인이 된다.

모두 그렇고 늘 그렇다.

 

사십 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

 

좀 어색한 핑계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정확할 수 없다는 것.

지도로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도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의미가 있기는 했다.

정확히 살필 수도 없고

선이 보이지도 않는 궤적을 누군가는 구태여 실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애썼다는 점.

정확히 알 수 없고 하나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온갖 정치적 의도와 편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세계.

그래도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75)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작가다.

나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도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 일도 그렇다.

어느날 황당하게 구덩이 속에 묻힐 존재이기는 하지만,

해석과는 달리,

삶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냄새와 온도를 가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구덩이도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구덩이에 빠져 죽느냐,

구덩이를 극복하고 기대고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의지다.

 

재미있게 전개되긴 하지만,

지도라는 상징체계와 삶을 잘 빗대고 있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성찰이 좀더 스토리를 통해 빚어져 나오길 바라는 아쉬움이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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