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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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서 가장 예쁘게 슬픈 단어는 '화비'였다.

꽃비가 떠올랐다.

 

花, 飛, 花, 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花飛, 그날이 오면)

 

잘 놀다 갔다

완전한 연소였다(花飛, 먼 후일)

 

누구나 죽는다.

그의 나이 아직 쉰도 안 되었지만,

벌써 부르는 녹턴은 깊다.

 

꽃이 떨어지듯

마지막 풍경을 대할 때,

당신이라는 풍경이 있기를 원하는 정도의 욕심,

그리고 완전 연소라는 다부진 꿈의 욕심.

조금 더 힘을 빼도 좋으리.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차가운 봄 바다에 잠긴 꽃들,

사랑한다던 영상이나 문자와

국가의 억압을 통해

어른들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렸다.

그래서 겨우내 눈을 맞고 얼어가면서 주말마다 광장을 지켰다.

두려운 겨울이었다.

 

참 좋은 날이야

내가 하찮게 느껴져서

참 근사한 날이야

인간이 하찮게 느껴져서(바람의 옹이 위에 발 하나를 잃어버린 나비 한 마리로 앉아)

 

가볍다.

더 가볍고 하찮게 살아야 한다.

그런게 밤의 노래, 녹턴이다.

 

여행기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참 많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여행기를 쇼핑하는 사람들은 더 많소

(이렇게 죽어갑니다)(om의 녹턴)

 

am과 pm도 아닌 om은

오옴~~~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제3의 시간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일 수도 있다.

 

주인 없는 개, 라는 말을 들을 때 슬프다

주인이 없어서 슬픈 게 아니라

주인이 있다고 믿어져서 슬프다

 

개의 주인은 개일 뿐인 거지

개와 함께 사는 당신은 개의 친구가 될 수 있을 뿐인 거지

 

이 개의 주인이 누구냐고요?

그야 개, 아닐는지?

 

이 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아는 좀 멋진 절친쯤 될 수 있겠소만(견주, 라는 말)

 

김선우가 확 나이들어버린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 실망이고(이전의 여성성을 노래하던 패기넘치는 시인은 어디로 가고)

어떤 점에선 획득이다.

 

아마도,

죽음의 땅에서 - 강정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너무 혼을 빼고 울 수밖에 없는 시대여서,

눈물난다...는 말보다

시를 뱉을 수 없는 불임이어서,

여성성이 사라진 녹턴의 황혼을 노래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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