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꽃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75
박권숙 지음 / 태학사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여름 방학 동안 중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장한 도서 중 한 권이었다. 왜 이 책을 가려 권했는지는 대략 짐작이 가기도 하고,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이 시조집의 주제는 죽음과 삶의 고비를 넘긴 작가가 그 사이에서 느낀 것들, 본 것들을 뜨거운 언어로 적은 것이다. 그래서 중학생에게 어울린다고 보기엔 책이 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학생에게 권해줄 만한 시집이 무엇이 있겠는가. 중학생이면 아직 초딩에서 벗어나지 못한 솜털들이고, 이제 막 변성기가 올 정도의 혼란한 아이들인데... 봉순이 언니 정도의 소설이라면 족할까.

아무튼 작가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예민하다.
시조 작가들이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리듬을 타고 넘는 그의 품세가 예사롭지 않다.
내가 평소 시조에 관심이 없어 그럭저럭 봐줄 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윤오월 고목나무 어디선가 매미 운다
비로소 목을 틔워 소리를 얻는 것은
저렇게 참는 일이다 기다리는 일이다

물처럼 흘러온 날을 정수리에 받으며
청록의 나뭇입들 가부좌 풀지 않는 낮
여울이 되어 흐르는 매미 소리, 소리들... (아버지의 밭 6)

이런 시들을 읽으면, 삶의 한 고비를 넘긴 이의 지혜가 다가 선다.

철조망 아래 잠든 내 어린 날 돌푸 끝은
이립의 나이에도 문득 살아나곤 한다
너와 나 사이에 쌓는 영토들의 견고한 벽

월남 소식 알리는 오후 뉴스 목소리가
봄 햇살로 부서지던 개굴창 옆 골목길에
선명히 나누어 긋던 땅따먹기 하얀 줄(줄2)

이 시에 나온 '돌푸'란 낱말에 왈칵 어린 시절이 다가 온다. 경상도 말로 '석필'을 가리키는 말이다. 돌푸. 얼마나 정겨운 사투리던가.

그의 투병일지들은 삶이 곧 찬란한 순간들의 연속이며 아픔의 순간들임을 가르쳐준다.

아프지 말 지어다. 깨진 그릇 못 쓰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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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7-2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푸'를 몰라 여쭤보려했더니... '석필'은 뭔가요?

글샘 2006-07-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필은요, 시멘트 땅 같은 데 잘 그려지는 돌입니다. 과학에선 무슨 돌이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 납석이라 하던가(?)

해콩 2006-07-2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石筆'인가 보군요. ^^; 이 정도면 직업병이죠?

글샘 2006-07-26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했어요. ^^ 에게게... 돌석 붓필 쓰고 직업병이라뇨. ㅋㅋ 곧 1정되실 분께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