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제주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

 

제주도 우도 출신 해녀 잠녀 가족이 일본 바다로 출가 물질 갔다가

도쿄 남쪽섬 미야케지마에 정착하며 시작되는

잠녀로서의 신산한 삶과 재일조선인으로서 겪게 되는

민족차별, 모국의 분단상황에 따른 이념적 갈등 등이 담긴 이야기.(328)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심사 소감에 적혀있다.

 

이 할미가 글쎄 여행중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지 뭐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기미가요마루라는 연락선을 타고

제주를 떠나오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던 거야.(321)

 

삶은 여행이란 비유도 있지만,

디아스포라의 삶은 신산하다.

일본 역시 패전의 우울 속에 잠겼고,

패전국 내의 디아스포라는 더 우울했으리라.

 

나는 쿼터가 아니라 하프야

 

할머니의 피가 섞인 것이기만 한 줄 알았던 손녀는

아버지가 한국인의 자손인 것을 알고 당황한다.

이런 말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서늘함을 느끼기 어렵다.

 

바다가 아무리 험악하고 모질게 굴어도

절대로 원망하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아라.

바다는 말이다.

우리 잠녀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으니가.

우리네 인생이 바다에 달렸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101)

 

구월이가 해금에게 들려주는 인생이다.

어쩌면 이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상황에 대한 서술이 더 많다.

자칫, 형상화보다는 역사에 대한 서술로 읽혀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

 

자주 나타나는 영탄조의 발언은 적절치 않고,

설명으로 처리한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그중 일부는 묘사로 바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329)

 

내가 느낀 아쉬움을 심사평에서 읽었다.

 

우악스럽게도 질긴 뿌리가 살아있는 한,

식물은 홀씨를 퍼뜨리며 제 깜냥대로 생존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 어찌 그와 다르겠는가.(126)

 

이 구절은 원폭 이후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지속적인 공존의 방법임을 인간보다 식물이 먼저 깨달았다.

사람들은 주도권을 인간이 쥐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생존을 위해 선택된 진화를 해나가는 식물에게

인간은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식물이 인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은 그런 속된 마음을 품을 줄 모른다.

오히려 깊은 신뢰와 충정을 다할 뿐, 결코 배신은 하지 않는다.(144)

 

작가가 식물에 대한 애정도 많다.

그런 사유가 담긴 구절들이 아름다운데,

소설의 형상화와 더 어우러질 수 있도록 탐구를 요한다.

 

중독성이 강한 양념 고추, 역시 식물이다.

식물도 욕망이 없는 인간에게는 아마 관심이 없을 것이다.(152)

 

우도에 검은 모래 사장이 있단다.

여수에도 검은 모래 사장이 있고, 일본에도 있다.

 

검은바다

우연은 체념을 완성하기 전에 오는 기회다.

체념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듯.

포기와 체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기는 중도에 그만둬버리는 것이지만 체념은 도리를 깨달아 자신의 의지를 거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은 달관한 자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87)

 

포기와 체념은 다르다.

포기하는 사람은 노력을 접은 것이지만

체념한 사람은 노력해보고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다.

삶의 자세를 탐구한 책으로도 의미있는 책이다.

다만, 스토리가 쭉쭉 전개되는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직 작가의 역량이 덜 발현된 탓이리라.

 

충만은 소각이었고,

소각은 새로운 시작이었다.(190)

 

해금과 한태주가 만났을 때를 묘사한 구절 중 하나다.

작가의 글솜씨를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인물과 스토리를 통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제주라는 섬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한 책.

제주의 낭만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제주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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