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수가 된 광부 ㅣ 이채로운 시리즈 6
권이종 지음 / 이채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60년대, 새마을운동 벌이던 시기, 나라에 돈이 없어서 독일이란 머나먼 타국에 간호사와 광부를 팔아먹은 적이 있었다. 케네디 형님께 잘 보이려던 박통은 미국이 제안하지도 않았던 베트남 파병까지 하고 말았다. 일본에 김종필이 보내서 까잇거 대충 도장찍고 돈 받아 오고...
권이종씨도 그렇게 해서 독일에 파견되었던 광부였다.
그의 광부 생활은 말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으리라.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그 가난하던 시절, 독일에서 굶주린 배 움켜잡고 공부하던 심경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글뤽 아우프는 '행운을 가지고 위로'하는 뜻이다. 광부가 운 좋게 복귀하길 바라는 인사란다. 슬프지만 처절한 인사다.
권박사의 초등학교라는 산서초등학교 교훈이 <환하게 묵묵하게>란다. 참 마음에 드는 말이다. 환하게 묵묵하게... 발랄하게 자라면서도 듬직한 어린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삶도 그렇게 보면 환하게 묵묵하게 살아온 일생이다.
내가 권이종씨를 곱게만 볼 수 없는 것은, 그가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엄혹하던 80년대가 열리고 있었고, 이순자의 사촌인가 하던 이규호 문교부 장관과 줄이 엮여, 빨갱이 교사를 몰아 내고, 새시대의 파란 교사만 기르려던 교원대학교에서 열심히 살던 시절들에 대한 그의 생각 없음이다.
그는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일는지 몰라도, 그의 교육학자적 삶에선 미국에 갔다 온 식민주의자적 권위주의를 본인도 모르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
아무 생각없는 교육학자라는 것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길러내고 있는 <아무 생각 없는 교장들>을 제 손으로 가르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아, 이 나라는 <국대안>으로 일컬어지는 국립종합대학교(서울대)의 미국유학자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국가로 기틀을 잡았는가. 미국의 본격적인 속국으로 기어 들어가려는가.
그는 스스로 얼마나 큰 상징 권력을 잡은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독일 광부에서 대학 교수가 된 자수 성가만을 생각하고, 제가 지닌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듯 한 점, 아쉽다.
아니다. 나나 스스로 잡은 권력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