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표준어라는 것은 참 마뜩잖고 못마땅하다.

내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그 태생이 폭력적이어서다.

국어 선생이라고 표준어를 가르치는 일도 우습다.

아직 제대로 된 국어 사전 하나 만들지 못한 나라에서 표준어에 대한 강박은 '애국심'에 버금간다.

하긴, 또라이들도 태극기 들고 나서니 애국지사연 하는 것이 현실이니 할말 없다.

 

남덕현이 '충청도의 힘'을 다시 펼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을 빌린 것처럼 구수한 말투의 사투리가 넘치지만,

그 생각에는 작가의 그것이 반듯하니 들어있다.

 

"꽃피던 시절이 있으셨네요."

"다 헛꽃이지 뭐, 헛비에 헛꽃 피는 게지, 안그려? 헛꽃 지는디두 눈물 나는 게 사람이구."

북어대가리 삶은 냄새는 구수해도 아궁이 연기는 매운지라, 어르신도 나도 눈물을 질금거린다.(247)

 

조선시대로 치자면 '-기'나 '-부'처럼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충청도의 말에 담긴 능청스러움이 형식으로 갖춰졌으나,

등장인물에 비하여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고 담으려는 이야기가 깊어졌다.

결국 형식과 내용이 엇박자인 셈.

 

밑도 끝도 없는 싱거운 소리만 늘어간다.

오랫동안 열어야 할 것은 닫고, 닫아야 할 것은 열고 살았다.

그래서 열다와 닫다는 나에게 실패한 언어다.

실패한 언어의 의미,

실패한 언어의 은유와 비유와 상징을 버리는 길은 침묵뿐이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실패한 언어를 입에 담을 때에는 의미를 제거하고 소리만 내고 싶고, 그리하여 싱거워진다.

실패한 언어들이 날로 쌓여간다.

아직은 참지 못하고 싱거운 소리를 내지만,

언젠가는 침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266)

 

내 읽기로는 그가 침묵에 이르기보다는,

이정록처럼 시를 쓰는 건 어떨는지... 한다.

 

탕웨이가 등장하는 코믹 영화 <시절 인연>이 생각난다.

 

만날 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삶의 길 위에서 만나기도 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사건들이 우연을 가장하여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듯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 읽노라니,

읽는 내가 다 힘이 든다.

 

분명히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언지를 알 것도 같은데,

굳이 촌로들의 상황을 들먹여서 충청도의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넘실거린다.

과잉이어서 그렇겠다.

 

사투리는 힘이 세다.

그것은 사투리가 스토리를 엮어가서라기보다는,

상황을 요약적으로 집약할 수 있는 말들이나 눙치고 들어가는 효과가

표준어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보다 '직지인심'할 때가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순실이를 비판하는 명문장보다 '염병하네~'가 통쾌한 일갈일 때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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