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한 꽃들의 축제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소疏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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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트인다, 소통한다는 의미의 한자로,

한문 경전을 글자를 짚어가면서 문리가 트이도록 설명하는 글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 아니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어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해석을 도모하기도 한다.

 

금강경을 사경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소의경전이라 할 정도로 그 내용이 심오하다 할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결국, 니가 부처니 그것을 깨달으면 세상은 극락 찾을 것도 없고,

결국 니가 살아가는 그 일이 제일 소중한 것이여~ 하는 말이렷다.

그렇지만, 일상은 늘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곳이다.

 

불교의 원리는 기독교처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하고 주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망상이다~ 이런 깨우침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일 때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체라기보다

감각과 정념, 관심과 인식, 기억과 편견을 토대로 부풀려지고 증폭된 어떤 것.

그래서 자아의 관념이 실체 없는 환상이라고 말하는 것.

이 저간의 소식을 한마디로 '공'이라고...(150)

 

그러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종을 말살시키고 자기만 살겠다고 다투는 데는 그런 관념이 배경이 된다.

 

분별은 이 세계 전체의 고통을 산출하는 무지의 핵심이다.(콘즈, 153)

 

혜능의 설명은 일반인과 수련자에게 다르게 닿기도 한다.

아무튼 금강경은 이 험한 세계의 바다를 건네주는 '뗏목'으로서 가장 큰 것이다.

'반야심경'이 요점정리 암기본이라면, '금강경'은 정석이고 개념원리인 셈.

 

금강경이 반야심경과 달리 체계적이기보다는 설득적, 반복적.

뗏목이기에 목적은 일깨우는 것.

근기와 상황을 고려하여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 다른 어법으로 하는 방편.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다.(235)

 

하나님 붙들면 도그마가 된다.

 

어떤 궁금 많은 학생이,

"세상은 끝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시간은 무한하냐, 세상은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에 붓다는,

"화살에 맞은 사람이 당장 해야 할 일은,

화살을 뽑고 독을 치료하는 것이다

쏜 사람의 피부색이 검은지, 밥은 먹고 왔는지는 알아서 무엇하려느냐?고 대답.(195)

 

인간은 자신의 감옥에서 갇혀 사는 수인이다.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관자재, 자유롭게 사물을 보게될 때,

전혀 기대치 않던 곳에서 여래와 관음의 얼굴이 떠오를 것.(213)

 

뗏목을 포스트 모던의 어구를 빌려 '썼다 지워야' 하는 물건(245)이라 했다.

 

글자에 얽매이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매 순간 공부해야 한다.

 

진리의 수행은 다음 윤회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한 보험이나 적금이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지금 여기 마주친 생사, 그 큰 바다를 건너기 위한 뗏목이다.

한사코 부여잡되, 저 언덕 기슭에 닿았다 싶거든, 버려라.

그래야 계속 길을 갈 수 있다.(혜능, 270)

 

금강경을 겨우 한 번 사경했다.

반야심경은 사경이 쉽고, 읽으면서 스물 몇 자의 없을 무와 빌 공을 되뇌게 되면서 마음을 갈앉히는데 좋다.

금강경은, 수보리를 여러 번 써야 하고, 어의운하리오... 어떠냐... 이런 말들을 쓰자니 거리는 멀다.

그렇지만, 금강경은 말이 금강경이지, 이것은 진리의 글자가 아님을 깨닫기에는 훨씬 직설적이다.

 

금강경이 서른 꼭지가 넘지만, 핵심은 맨 앞의 서너 챕터에서 다 드러났고,

계속 부연 설명임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매니큐어를 품평하지 않는 자세다.

달을 우러를 수 있으면, 한 생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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