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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1 ㅣ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가문의 수치를 가문의 영광으로...
'사'짜(字)가 붙은 직업이 인기라는 시쳇말이 있는데,
그중, 교사나 의사같은 천직으로 여겨지는 말에는 스승사 師 자를 쓰고,
변호사, 기사의 경우 선비사 士 자를 쓰는데,
판검사의 경우는 일사 事 자를 쓴다.
사건을 검사하고, 사건을 판단하는 직업이란 의미가 강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남편이 죽고 2년만에 아내가 자진하였다고, 열녀로 지정해 달라는 소청이 올라와 조사에 나서는 이야기다.
박지원의 <열녀 함양 박씨전>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조선 후기,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인간'을 '미망인 未亡人'으로 불렀다.
미망인은 언젠가 죽어야 할 인간이므로, 친족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여 결국 죽고 나면 열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요즘은 '국가유공자' 가족과 같은 혜택이 '열녀 집안'에 있었던 모양이다.
스토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데,
여자들은 무조건 이쁘고 봐야 한다는 좀 해괴한 시츄에이션이야 그렇다 치고,
박지원의 소설처럼 당시에는 '김아영'이라는 양반집 며느리의 이름을 만나는 일은 생뚱맞다.
아직도 고령 박씨 종친회는 정정한 모양이더라마는, 안동 김씨라든지, 의유당 김씨 처럼 불리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멋진 것만 찾아 헤맬 때도 있었지.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 안에 상처를 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이 가슴 속 비명을 혼자 듣는 거라네.(2권 79)
골초 김진의 뽀대나는 개똥철학이다.
이전엔 담배를 끊는 사람이 독한 사람이었다면, 요즘엔 아직 끊지 못한 사람이 독하달 정도로 압박이 심하다.
기실 담배가 아니라도, 스스로 상처를 안은 듯한 모던 보이처럼 보여 여성들이 좋아할 캐릭터일 수도 있으나,
평면적일 정도로 멋지기만 한 것은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그닥~일 수도 있다.
이 살인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오라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계획 아래 벌인 짓이어서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2권 238)
요즘 세태에 어떤 법리를 읽더라도 시사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치밀한 계획은 '특수' 범죄로 처리되어 용서에서 비껴간다.
그것이 제대로 국가라면, 이재용도 비껴가선 안 된다.
비껴간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 국가라면, 독재국가는 되겠다. 불법국가.
"사방 곳곳에 우리를 모해하려는 무리들로 가득차 있음을 알지 않는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이 두려워 몸을 사릴 때가 아니라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248)
그래, 그런 시절이 있는 게다.
김탁환은 왜 역사물에 그리 매몰되어 있는지를 의아해한 적도 있다.
그것은 창조에서는 한발 비껴선 자리가 아닌가 하고.
그렇지만, 요즘 돌아본다면, 그가 꾸준히 역사에 침잠하고 의탁했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도 한다.
한때 정조의 시대를 빌미로 '장미의 이름'의 명성과 매혹을 등에 업고 돈 좀 벌었던 어떤 작자가 요즈음 정유라 보호 교수로 구속된 일도 있는 걸 보면,
필명을 날리는 일은 참 구름같은 일이다.
시대의 이야기를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흔들리며 바른 방향을 찾아 떨고 있는 나침반의 자침처럼,
<거짓말이다> 같은 작품을 품었다 탄생시키는 것도 그의 몰두에 어떤 방향성을 노정해 주는 듯 하다.
김춘수 선생의 '밤의 시'를 읽는다.
"집과 나무와 산과 바다와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가난한가"
모를 일이다.
구름도 산도 갓 피어난 가을 국화도 자기 식대로 외롭겠지만,
그 고독을 응시하는 밤과 낮은 특별하다.(에필로그)
십년 전에 그가 십년 후의 그를 상상할 수 없어 떨고 있었을 때 쓴 글이다.
아직도 그는 약하고 가난한 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특별한 작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후반은 프랑스 혁명기와 겹친다.
임진왜란 이후,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주 낮은 정도였으나 이 땅에도 조금 피어올랐을 것이다.
천주학과 동학 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그것인데,
왕정은 그것에 살육으로 대응한 것은 참 슬픈 노릇이다.
1권에서 어떤 세상이든, 범죄 수사의 기본이 되어야 할 이야기가 나온다.
"형님 벼슬은 종육품 당하관 현감이지만, 정일품 당상관 영의정도 못하는 일을 하셔야 합니다.
적성에서 그 뿌리를 잘라내시면 세상이 바뀔 날도 한층 가까워집니다.
혹시 사자를 살피고 계셨습니까?"
"나라의 잔치, 대취회 날은 여러 짐승을 만세산으로 끌어내는데,
범, 표범, 곰, 코끼리 등을 내놓은 뒤에 사자가 나온다.
사자는 몸뚱이가 짧고 작아서 집에서 기르는 금빛 털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다.
여러 짐승이 사자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기가 질리는 까닭이다."(1권 207)
그래서 <고위공직자 수사처>(소위 공수처)가 필요한 것이다.
최순실이 그렇고, 김기춘이 그렇다.
인간으로 치면 참으로 볼품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위세에 기가 질려 온갖 협잡질에 말려들곤 했다.
이 소설에서도 범죄자들의 온갖 협박과 회유, 높은 인맥의 방해 들이 난무했다.
더러운 역사는 왜 변하지 않는 것인지...
김탁환의 소설을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이인화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낼 것으로 믿으므로...
고칠 곳...(내가 읽은 것이 1판 1쇄여서 이제 수정되었는지 모르겠다.)
1권 220쪽, 김진과 고범영, 그리고 화자는 모두 병진년(1760)년에 태어난 동갑...이라는 부분이 있다. 병-으로 시작되는 갑자년은 끄트머리가 6으로 끝나야 하니, 병신년(2016년 -240 = 1766)일 가능성이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