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황홀 - 우리 마음을 흔든 고은 시 100편을 다시 읽다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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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와 '황홀'을 노자 도덕경을 읽으며 만났을 때 신비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라 하며,

잡으려 해도 얻지 못하는 것을 '미'라 한다.

형상없는 형상, 사물없는 형상, 이것을 홀황이라 한다.

그것을 맞이해도 머리를 볼 수 없고, 뒤따라도 꼬리를 볼 수 없다.(노자 14장)

 

편집자가 이 책의 제목을 저리 붙인 것도 그런 의미를 담았으리라.

고은의 시 세계는 얻으려 할 것이 없고, 얻기도 힘들다는 의미를 담아...

 

고은의 정신은,

영혼의 감탄부호라 할 시를

상식적인 언어로 의미망을 풀이하는 해설과 양립하기 어렵다.

내가 시 옆에 몇 마디 추가한 것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돕기 위한 허사에 불과할 뿐...

 

고은 시인은 자신의 사유와 영감의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고은의 삶이 펼친 악보와 같은 것이지만,

독자가 그 시를 읽고 반응하는 이유는 자신때문이다.

선율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도 모두 또 다른 건반을 가진 몸통들이다.(211, 엮은이의 말 중)

 

고은의 시는 좀 어렵기도 하다.

뭔 말인지 잘 안 잡힐 때가 많다.

만인보에서는 좀 구체적으로 사람이 형상화 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시들은 뜬금없이 공중을 휘어잡고 낚아챈다.

그야말로 이, 희, 미이고, 홀, 황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서 뭔가를 얻는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먼 산이 너무 가깝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고은, 문의 마을에 가서, 부분)

 

눈이 죽음에 이어 덮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묻는 것인지,

눈이 죽음까지 덮었으니 이제 더 이상 덮을 건 없다는 말인지...(엮은이 글)

 

해설해봤자 더 희미하고 황홀한 번득임만 가득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삶이 그렇다.

등산과 같이, 오를 때 보지 못한 것 내려갈 때 볼 수 있다.

나이 먹으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

돌아가는 길은 늘 초행보다 가까운 법.

그래서 나이들면 늙는 속도도 빠르다.

그때 보이는 그 꽃,은 참 황홀하고 아련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고은)

 

이런 시 구절에 목이 메인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도 꾸역꾸역 혼자서 밥을 처먹었다는 어떤 여인이 떠오르면 욕지기가 난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

저게 요순시절이구나

나는 안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만세 소리보다 백 번이나 귀중한 것을(3월, 부분)

 

아~ 아이들...

아이들을 낳지 않는다 하니, 귀한 것을 잃는 기분이다.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있어라(여수 3)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했는데,

그리움은 늘 닫힌 문,

이런 헛헛한 날들이 또한 인생인지도...

 

저 불빛 하나!

눈 감았다가

다시 눈떠서

함께 잠을 이루지 못하네(여수 52)

 

저 불빛 하나만이라도

내 마음 같을 양이면...

그래서 거기 '함께'라는 말 붙일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일 때 삶은 또 얼마나 헛헛함의 연속일는지...

 

고은을 읽는 일은,

노자의 이,희,미를 만지는 일이고,

홀,황을 만나보는 일과도 같다.

그러고 보니, 사람만나는 일도 그렇고, 독서도 그렇다.

소중하고 귀중한 걸 깨달으면 그 곧 부처인데,

참 그 소중함 모르고 싫어하고 지겨워하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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