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은 게 일년 전이다.

스토너가 작가의 분신인가 싶을 만큼, 좀 따분한 남자 아닌가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토너보다 훨씬 깊은 작가를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카이사르에게서 황제를 물려받는다.

이 책은 옥타비아누스로 개칭하기 전, 옥타비우스 시절의 그를 주로 그린다.

카이사르의 누이의 외손자였던 옥타비우스.

카이사르는 아직 젊었기에 옥타비우스에게 황제 수업을 할 요량이었을 테지만,

죽음은 불현듯 찾아드는 법.

뜻밖에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3두 정치 체제로 접어든다.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동방을 지배하는 군인 안토니우스에게 옥타비우스는 애송이였으나,

선견지명이 있어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붙여준 친구가 데생에 늘 등장하는 <아그리파>다.

악티움해전에서 아그리파는 옥타비우스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유명한 '판테온' 같은 건축물도 지은 아그리파는 옥타비우스의 제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티베리우스가 후계자가 된다.

티베리우스는 선악의 평가를 받는데, 상당히 충실한 행정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예수의 죽음을 포함한 시대인 만큼, 기술에서 불리한 작용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독특하게 <서간>, <일기>, <기록물> 등을 찾아나가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모자이크 조각들이 이곳저곳 이어지노라면,

어느 순간 큰 그림의 틀이 점점 보이고, 나중에는 압도당하는 숭고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인 듯,

이야기가 박진감이 넘치지는 않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 듯한 착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삶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26)

전투에서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회의감에 휩싸인 카이사르에게 어린 옥타비우스는 이런 말을 드려줌으로써

카이사르의 어린 시절과 겹치는 상상을 하게 하고, 제위를 물려주고픈 욕망을 들게 한다.

키케로는 구제불능의 모사꾼이다.(76)

옥타비우스가 동료 루푸스에게 쓴 편지의 부분이다.

키케로는 옥타비우스가 안토니우스의 상대로 약해서 감싸주는 역할을 하지만,

좋은 평을 받진 못한다.

젊음은 무지하고 열정은 모호할 뿐. (228)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율리아의 탄식은 가볍지만 무겁게 울린다.

옥타비우스를 사랑하지만 그의 친구 마에케나스와 엮인 테렌티아의 대사 또한 절절하다.

지금 도대체 어디 계시죠?

내가 불행해지니 기분이 좋으신가요?

그래요, 당신이라도 기쁘면 다행이겠군요.

연인들은 늘 잔인하니까. 당신이 나만큼 불행하다면 나도 행복해질 것 같나요.

부디 불행하다고 말해줘요. 그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테니까.(255)

정철의 사미인곡처럼 스토커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절절함은 '범나비 되어 꽃향기 묻혀서,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보다 선명하다.

이 책은 크게 1부에서 옥타비우스의 권력 장악을, 2부에서 정략결혼과 파탄의 불행한 가정사가 그려진다.

내 기억... 이제 아무 소용이 없구나.(308)

이렇게 눈을 감는다.

그렇다. 기억은 그 사람이다.

죽음은 기억을 소용없게 하는 일이다.

인생은 참 먼지처럼 작다. 아무리 그가 위대한 자 <아우구스투스>라 할 지라도 그렇다.

평론가가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을 인용하여 윌리엄스의 작품을 평했다.

영웅이란 바로 자신으로 남기를 바라는 사람이다.(415)

윌리엄스의 '스토너'도 '아우구스투스'도 작가가 죽은 다음에도 살아 남아 <자신>의 분신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니,

작가를 <아우구스투스> 반열에 호명하는 칭송으로 넘치는 문장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록 속에서,

모자이크처럼 명멸하는 나날들...

그 속에서 중심인물들 역시 희미한 오브제가 되어 어느 순간 점점 명확해 지고,

독자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흐릿해져가는 소설이다.

마치, 우리 인생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