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야찬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선종훈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단편집이나 시집을 골라 들면, 표제로 올라 있는 작품을 우선 뽑아서 읽으려 든다. 제일 맛있는 것을 먹어 보고 고놈의 매력에 따라서 나머지 작품들의 짠한 맛을 배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미셸 투르니에의 단편집 <사랑의 야찬>에는 1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는데, 10편은 다른 책에 수록되어 있어 나머지 9편만 실려 있다. 저작권 문제가 좀 묘한 책을 만든 셈이다.

투르니에의 이야기들은 콩트와 누벨로 나누는데, 누벨은 현대식 단편소설인 반면 콩트는 구두 전승과 신화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자의 해설도 재미있다.

그래서 여기 실린 그의 콩트들은 신화와 전설 그 사이에서 희극과 비극의 모습을 띠며 구전의 형식으로 인간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되살리고 있다. 아무래도 풍자적이고 재미있는 콩트에는 음률적 요소들이 작용하게 마련인데, 번역으로 읽는 맛은 원어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난 <짚북데기 위의 아이>의 상상력이 가장 인상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병원 분만실의 기곗덩어리와 번들거리는 벽들 사이에서 태어나 병원 중독, 의료 중독, 약물 남용에 쉽게 빠진다는 가정이다. 인간에게 '출생의 자국'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엔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

<두 향연>과 <그림에 관한 전설>은 탈무드를 읽는 기분이고,
<음악과 춤에 관한 전설>과 <향수에 관한 전설>은 성경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를 좋아하는 이라면 읽어볼 만도 한데, 그의 글들이 좀 어렵다고 생각했거나, 그의 글을 읽으려다가 덮어버린 이라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

아쉬운 점은 200페이지의 책을 한 페이지의 절반에만 인쇄를 시도한 것은 여백을 주는 글이라는 새로운 형식이긴 하지만, 나더러 편집하라면 80페이지면 충분히 시집처럼 얄팍한 책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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