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향수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단편이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삶의 전형>을 본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의 불안정한 하루 하루를...

첫 번째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깊이가 없다는 비평을 들은 여류 화가가 자살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남의 말에 그렇게 귀기울이다 죽어간 불행한 사람은 단지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 정도는 아닐 것 같다. 나도 얼마나 남의 칭찬을 그리워하는지... 어리석게도 말이다. 그 칭찬한 사람들도 몇 년 후면 모두 사라져 버릴텐데 말이다.

두 번째 단편, <승부>에는 삶의 규칙을 곧이곧대로 준수해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른 인물과, 전혀 새로운 기법으로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주변에 새로운 도전자를 응원하다가 우물우물하고 마는 관객들을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회의 규칙에 따라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그런 자리에 오를 기회가 전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자를 높이 사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도전자는 대부분 박살나 버리기 십상이고, 그 도전자를 추종하던 관객들은 다시 묵묵한 비겁 속으로 뒷걸음질칠 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아, 나는 어떤 삶을 살 거냐... 쉽지 않은 소설이다. 아주 간단한 쉬운 소설인데 말이다. 인생이란 부질없는 것이면서도, 포기할 정도로 쉽진 않은 까닭이다.

세 번째 단편,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세계와 인간이 점점 돌조개로 변하고 있다는 모티프를 이야기한다. 삶은 이렇게 화석화되는 과정인가? 현대란 화석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마지막에 덧붙인 에세이, <... 그리고 하나의 고찰>에서는 문학이란 어떤 힘을 가진 것인지를 직접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제가 대부분인 문학이란 놈은, 사실 우리 머릿속에 그닥 남아 있지도 않다. 토스토예프스키를 읽었다고는 하지만, 별로 기억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나도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이야기가 꼬여버리는 일도 많고, 아이들 앞에서 소설 줄거리를 엮다가 잊어버리기도 한다. 건망증으로 시달리는 우리에게 문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그리고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도 황당무계하고 무의미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이야기들은 아주 쉽다. 그러면서도 꼭꼭 씹다 보면, 삶의 섬유질들이 남아서 질겅거리고, 단물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유혹임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인다.

우연히도 멋진 책을 만나는 기쁨. 이것이 책 읽는 기쁨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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