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AG건축기행 1,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 김봉렬 교수와 찾아가는 옛절 기행 2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서 관광을 간다는 것은 '절집'을 구경간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이들이 수학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왜 절에를 가요?'하고 묻는다. 교회는 종교를 위한 건물이지만, 절집은 그만큼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종교'적 가치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천오백 여년이 되었으니 그 절집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겠지만, 특이하게도 90% 이상의 절집은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것인데도, 억불 정책을 써 온 조선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건축물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표지에 정말 고요한 경지의 절집 계단이 등장한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여기는 꼭 가봐야 겠다. 도대체 어딘지 알아 둬야지... 하는 속셈으로 책을 들여다 봤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수십 번을 갔을 부산 범어사 계단이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하긴 내가 범어사에 갔을 때는 거의 소풍때니 사람이 득시글거리는 범어사에서 이 한적한 계단을 볼 수 없었으리라. 조만간 틈을 내서 범어사를 평일에 가 보리라 생각한다.

건축은 신심의 상징이라고 한다. 험난한 지형에 난공사일수록 신심이 깊어진다고 하는 것일까? 낙산사 홍련암처럼 바닷가 절벽 위에 지은 암자도 있는가 하면, 남해 금산 보리암, 관악산 연주암처럼 산꼭대기에 얹은 암자도 있다. 대단한 조상들이다.

주어진 조건이 어려울수록 명 건축이 탄생할 확률은 높아진다고 한다. 불리한 지형을 창의적으로 건축해야 하므로 그렇다는 결론이다. 하긴, 이것이 인생이다...에 등장하는 이들이 대단해 보이지만, 결코 부럽지 않은 것이 그런 연유 아닐까.

이 책에 등장하는 절집들의 건물과 여백은 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갖고 있다.

관조 스님의 사진 덕이겠지만, 건물과 여백의 관계가 사라질 때 건축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는다는데, 내가 절집에 갔을 때는 주로 사람이 많은 때여서 그 고즈넉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내리는 날, 우산을 받고 찾았던 절집들이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한국의 절집들을 내가 몇 군데나 가 봤을까? 족히 수십 군데는 가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처럼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둔 절집 기둥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고, 안성 청룡사 대웅전의 휘어진 소나무 기둥들도 눈맛을 시원하게 한다.

부처님의 불국토이자 예불 장소이면서 수도원이었던, 이제는 관광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가람에 대해 알고 보게 되니 또 다른 눈의 트이는 듯 하다. 역시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유홍준 님의 말씀은 만고의 진리인 듯 하다.

大成若缺 大直若掘 大巧若拙...

크게 이루는 것은 뭔가 빠진 듯하고,
쭉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정말 정교한 것은 졸스런 듯 하다.

아, 한국 절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노자의 이 구절이 아닐까?

깎은 듯한 비례미를 보여주는 서양의 정원처럼 삭막하지 않은 그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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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7 1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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