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다시 우리의 외침은 필승도, 애국도 아닌 인권이 되어야 한다.

공은 공공의 폭력을 싣고…

인권운동가가 본 월드컵…
승리의 환호 속에 ‘불편한’ 소식은 외면당하는 6월 …
애국의 열기가 치솟는 틈을 타 국가는 약자들의 시위현장에 폭력을 행사한다

▣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야, 6월은 안 돼. 뭔 일을 해도 안 된다고.” “개막 전후 며칠간이 제일 위험해. 그때 칠지 몰라.” 월드컵의 계절이 왔다.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월드컵의 신화여, 어게인(Again)! 한몫 챙기려는 언론과 자본이 다시금 월드컵의 열광을 부추기는 요즘, 운동단체들은 6월을 피해 행사 일정을 조정하고, 6월을 기해 휘몰아칠 국가폭력에 대비하느라 그야말로 똥줄이 탄다. 월드컵은 탈정치화와 정치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련된 정치의 장이다. ‘현실의 전쟁’을 비가시화하는 대신,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국민 총단결의 기치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다. 그래서 월드컵은 인권의 무덤이다. 월드컵 기간 동안 사람들은 둥근 축구공이 빚어내는 극적 드라마와 묘기대행진, 자국의 순위에 넋을 빼앗긴다.

월드컵의 암운은 오래간다

그사이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불편한’ 소식들은 참담한 외면을 당해야 한다. 지난 2002년에도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사망 소식은 변방에서 소리소문 없이 잊혀졌다.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노점상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공(公)폭력’이 들이닥쳐도 그 현장에 따라붙는 언론은 없었다. 외국의 경우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98년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한국을 3 대 1로 격파하자 거리로 쏟아져나온 인파는 “멕시코! 멕시코!”를 외치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며칠 전 치아파스주 사파티스타를 상대로 멕시코 정부가 벌인 폭압적 진압작전은 승리의 환호 속에 ‘잠겨버렸다’. 올해라고 다를까. 가히 인권과 동북아 평화에 대한 총공격이라 부를 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상, 평택의 고통은 ‘온 국민이 하나’라는 강요된 신화 속에 묻힐 것이다.


△ 평택 대추초등학교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에 저항하는 시위대. 월드컵에 평택의 고통은 묻힐 것이다. (사진/ 류우종 기자)

더 큰 문제는 월드컵 동안 치솟을 애국의 물결이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이 사회에 깊은 암운을 드리울 것이라는 점이다. 월드컵은 국가별 대항전으로서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요소를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상업적 이익에 눈먼 언론은 기꺼이 애국의 열기를 주조해낸다. ‘전사’와 ‘정복’이라는 군사주의 용어가 판치는 이유도, 국가의 자존심을 연거푸 읊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승에 집착하는 광적 열기는 자연스레 국가주의와 파시즘적 몰이성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 뒤 12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숨진 사건을 보자. 문제의 경기가 국가 대항전이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응원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축구였다고? 글쎄…. 월드컵은 순수한 축구팬들이 빚어낸 신명나는 축제였을 뿐이라던, K리그에서 다시 보자던 붉은 악마의 공언은 어디로 증발해버렸나.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외치라

‘온 국민의 하나됨’을 강조하며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하나의 열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때, 노동자와 노점상, 장애인들의 정당한 생존에 대한 요구는 어느새 국가 통합을 해치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치부되고 만다. “평택 주민들은 사익(私益)을 버리고 국익을 위해 백기 투항하라!” 땅에서 농사짓는 일이 곧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 하나로 보수언론의 뭇매와 군경의 공포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더 휘몰아칠 ‘국익’ 공세는 여론의 차가운 외면 속에 평택 주민과 지킴이들의 숨통을 아예 끊어놓을지도 모른다. 국익의 신화 속에, 애국의 물결 속에 소수자의 목소리, 다른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지금 평택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대 사람’의 전쟁을 말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는 없다. 다시 우리의 외침은 필승도, 애국도 아닌 인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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