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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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추나'이다.

'추나' 요법이라 하면 글자의 뜻으로는 '밀고 당긴다'는 의미이고,

동양 의학에서는 척추 관절이나 근육 등의 이상을 바로잡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중국어 사전을 찾으면 '뚜이나'는 '마사지하다, 안마하다'는 의미란다.

 

가장 천한 자본의 나라 한국에서는

마사지... 하면, 퇴폐 업소를 떠올리게 한다.

창녀촌을 불법으로 몰아내면서,

번듯하게 개업한 창녀들의 술집을 번성하게 하는 것은,

마치 농촌을 무너뜨려 아파트 촌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법인데,

이 책의 마사지사는 말 그대로 맹인들의 마사지 공간을 말한다.

 

점자를 위한 워드 입력 봉사를 하는 아이와 면접 준비를 하면서 질문을 던지니,

처음엔 그냥 갔는데, 거기서 맹인이 서비스의 정신과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을 직접 보고

봉사 시간 채우는 것보다 그 일이 훨씬 의미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답을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한국은 장애인 출현률이 극히 낮은 나라이다.

통계로 보면 선진국의 10%에 비해 한국은 4% 정도에 못 미친다.

펠프스도 한국에 태어났으면 문제아로 낙인이나 찍혔을 거라는 농담도 씁쓸하다.

중국인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보다 얼마나 나으랴 마는...

이 소설은 맹인들의 삶에 대하여 따스한 시선으로 기술한다.

어지간한 애정이 없이는 이런 책을 쓰기 어렵다.

 

비페이위의 소설은 여러 편이 번역되었는데 인연이 없다가 이번에 읽었는데, 참 좋다.

 

결혼식은 아주 간단히 치를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예쁘게 꾸며봤자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인의 결혼식.(41)

 

맹인으로서 직업을 구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마사지사의 일을 배우게 되지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기 쉽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갈등도 겪고 해소해 나가기도 한다.

 

그녀는 말에도 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푸밍의 말은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절로 머릿속이 환해졌다.

자신의 마사지 실력이 좋지 않았던 원인이 마음가짐에 있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썼고, 너무 조심스러웠고 너무 주저했다.(116)

 

피아니스트 출신 두훙의 이야기다.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127)

 

맹인이 아닌 이들에게 언어의 <분절적 음운 요소> 외에도,

<비분절적 음운>이 의미를 정확하게 해준다.

표정이나 주변 상황이 그런 것이다.

맹인의 경우, 이 상황을 볼 수 없으니, <분절적 음운> 외에 <반언어적 요소>인 <어조, 높낮이, 어투, 고저나 음량> 등이 더 큰 요소일 수 있겠다.

이렇게 이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읽게 해준다.

신선하고, 가슴 저릿한 아픔이 있다.

 

내가 분노하는 페이스북의 뉴스는 맹인들에게 접할 수 없는 구역일 것이고,

인터넷 기사 역시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비페이위의 책들이 위화와 비슷한 시기의 중국을 그리고 있다 하니,

모옌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리는 인간의 운명을 그리는 작품들일 듯 싶은데,

그이 문체는 따스하다.

소재가 달라지면 신랄하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의 <위미>, <청의>, <평원> 등도 찾아보고 싶다.

 

이 세계를 사용할 뿐, 이해할 수는 없었다.(181)

 

붉은 그리움과 푸른 시름,

푸름은 무성해지고 붉음은 시드는 것을...

'아름다움'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 문제.

 

아, 어쩔 수 없는 이해의 절벽이 장애의 한켠에 놓여있을 수 있겠다.

 

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말은 특별한 때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되새겨서는 안 된다.

되새기면 의미가 커진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엄청난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219)

 

사랑에 있어서는 한 마디 말이 불씨가 된다.

분노의 경우에도 그렇다.

불씨는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머저리도 있지만,

들불의 불씨는 바람에 요원의 불길이 된다.

 

인류는 시간을 상자 안에 넣어두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째깍이게 했다.

시간 앞에서는 모두가 맹인이다.

시간의 진실된 모습을 보려면 방법은 하나뿐.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은 그 자신의 눈이 방해물이 되어 영원히 시간과 더불어 한 몸이 될 수 없다.(208)

 

좀 어렵다.

그렇지만, 시계를 쳐다보는 이의 시간과 째깍 소리의 시간은 다를 수 있겠다.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게 하는 사고를 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소설.

 

그는 사랑의 뒷면에서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꼭 점자 같다.

글자의 뒷면이라야 그것을 만질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듯이.

(점자는 점필로 오목새김하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고,

읽을 때는 뒤집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감, 317)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반대쪽이고, 방향도 거꾸로라는 것.

사랑을 이해하는 것과 잃는 것 역시 그렇다는 것.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흘리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회식 도중 쓰러진 사푸밍을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하게 한 동료들 중

맹인이 아닌 가오웨이를 맹인인 줄 착각한 간호사.

 

간호사는 문득 그녀가 자신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선,

지극히 일반적이고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시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간호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무서워서,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485)

 

맹인들로 이루어진 위문단 사이에서 발견한 가오웨이를 보고 질겁을 했다는 것은,

전철 상록수 역 같은 곳에서 동남아 사람들 사이에 자신만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섬찟,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일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한계.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한계.

 

마사지사들의 삶을 통하여

사람의 시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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