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다음날 - 구활의 스케치 기행
구활 지음 / 눈빛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가 참 부러웠다. 정찬주의 암자로 가는 길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느낌. 운수 납자도 아니면서 만행의 길을 떠나듯 절집을 그토록 많이 훌훌 다니면서 글을 쓰고 스케치를 하는 삶에 부러움이 컸다.

그런데, 그런데...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아쉬움이 많이 묻어난다.

절집 기행인데도 선사들의 서늘한 뒷태를 느끼기 보다는 걸쭉한 입담을 좋아하는 그의 글은 내 스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미황사를 그도 그토록 경탄하면서도 공룡 이빨처럼 두드러진 배경을 좀스런 선으로밖에 못보게 된 탓일까?

전등사의 추녀를 떠받치고 앉은 여인의 형상에서 누드 모델이 된 사하촌 주모를 읽어 내고, ... 여자라면 몸이라도 던져 하룻밤 육공양이라도 하고 싶은 멋쟁이 처사... 같은 구절은 내가 싫어하는 취향이다. 난 남자면서도 이런 느끼남을 싫어한다.

왜 예술의 지고지순한 카타르시스의 경지를 만나면 '예술적 오르가즘' 처럼 속된 낱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내가 별로 순수한 인간도 아니건만, 취향은 취향이니 싫은 건 싫은 거다.

싫다고 생각하다 보니, 동양의 멋 간드러진 용마루 처마들을 스케치해놓고선, 뻐꾸기처럼 자기 성씨를 드러낸 KOO라는 인장을 찍은 가부장적 행태까지도 밉살스레 보인다. 그 옆에 '구활'이란 한자가 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스님처럼 탈속하면 성씨도 버려야할 마당에, 제 성씨를 둘씩이나 집어넣은 그림이 스스로 대견스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안거의 서슬 퍼런 선방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빌렸다가, 하안거 다음날 만행을 떠나는 잡인의 글을 만나 실망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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