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식 판타지 문학...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는 실현할 수 없다.(200)

 

슈베르트 음악을 배경으로 나누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다양한 모티프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얼개는,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은 환상에 의지한다.

 

집을 떠나는 소년 다무라.

담임의 생리혈을 주워갔다가 폭행을 당하고 깨어나지 않던, 그러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나카타.

애인을 잃은 도서관의 사에키씨와 성정체성의 혼란 오시마씨 등.

 

그들을 창조하기 위해 많은 작품의 모티프들이 동원되었다.

다무라에게는 오이디푸스의 예언과 카프카(체코 어로 까마귀란 뜻)의 변신.

그리고 나는 자유~라는 조르바의 방황이 시코쿠섬으로 그를 이끈다.

나카타에게는 소세키의 고양이가 반영되었고,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는 등의 백년의 고독이 마르케스와 함께 비친다.

 

환상적 리얼리즘은 메타포이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삶은 변하지 않는다.

무의식와 인간의 원형에서 그다지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메타포를 마구 쏟아붓는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반복이기도 하다.

그는 축적이라고 우기지만.

 

인간은 체온이 없으면 금세 냄새를 풍기는 시체가 되고 만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 속에서 뿐이다.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부재다.

 

다무라의 기절과 혈흔, 그 시간에 살해당하는 아버지.

꿈 속에서 책임이 시작된다(361)는 예이츠의 시와,

거리 같은 것에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363)는 까마귀 소년의 말.

결국 상상이 만드는 환상의 힘을 의미한다.

 

내 주위에서 잇따라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요.

그 중의 어떤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어떤 것은 전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를 잘 구별할 수 없게 됐어요.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실제로는 내가 그 일을 선택하지 건에 이미 일어나기로 정해졌던 것처럼...

나는 다만 누군가가 미리 어딘가에서 정한 것을, 그냥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아무리 애써 보았자 그런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점점 더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352)

 

그래서 그는 읽고 썼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물리적 거리같은 것과 시대배경에 상관없이 기시감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또 선택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

 

그가 '상실의 시대'에서 말한 것처럼 초콜릿 통 속에는 달콤한 것과 씁쓸한 것이 반반 들었을 뿐인지...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323)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을 각기 조금 다른 면에서 개선하려 주장을 만든다.

그 깃발의 색은 달라보이지만, 사실 견디기 힘든 것은 주장이나 깃발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아이히만을 예로 들었듯이,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속에서 시작된다.

 

상상력이 없는 곳에서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235)

 

썩어빠진 정치가들은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하게도 되는 대목이다.

그들에게는 상상이 없다.

현실만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암살'의 이정재가 '그때는 독립될 줄 몰랐지.'라고 상상하지 못함을 변명하듯.

 

불완전함이 축적되고, 상상에 의해 완전을 추구하듯,

인간은 묘한 존재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지만.(201)

 

이것이 하루키가 이 소설을 구상한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지루하다.

지옥같아 보이고, 참혹하고, 날마다 처참한 사고의 연속이다.

그러나 <상상의 힘>이 있다면, 불완전함도 견딜 수 있다.

싫증나지는 않는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이런 것이 하루키의 힘이리라.

밥 딜런보다 현실감각은 떨어지지만,

지겨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견디는 힘을 주는 환상의 추구가...

 

이 전쟁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사망했습니다.(121)

 

여교사의 젊은 남편은 전쟁에 나가 죽는다.

이런 의식이 보편적인 일본인의 수준이리라.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사망한 세계대전... 그리고 피폭의 피해의식...

가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들...

하루키의 상상력이 조금 발전해서 가해자임을 인지한다면... 하고 바라는 것 역시 상상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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